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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드스피크 Sep 25. 2024

솜사탕

소란

징-징-징

일곱시 십분이 되면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실눈으로 휴대폰의 시간을 확인하곤 다시 눈을 감는다. 아직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서. 이십분이 되면 또 알람이 울린다. 이제는 정말로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다. 손발을 좌우로 흔들며 여전히 잠에 취해 있는 몸의 감각을 서서히 깨운다. 가장 마지막으로 깨는 것은 눈이다.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린다. 눈을 떴으니 이제는 몸을 일으킨다. 일어나자마자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접힌 곳 없이 칼각으로 정리된 이부자리를 흡족하게 보며 씻으러 간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나가기까지 여유 시간이 오분 남짓 남았을 때, 유독 피곤한 날이면 오늘 하루 휴가 낼까 잠깐이나마 고민한다. 하지만 갚아야 할 카드값을 떠올리면 잠깐의 충동을 억누르게 된다. 놀기 위해, 먹기 위해,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만 하는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오전 아홉시부터 오후 여섯시까지 꼼짝없이 회사라는 감옥에 갇혀 퇴근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며 개미처럼 때로는 베짱이처럼 일을 한다. 퇴근 시간이 되면 상사에게 퇴근한다는 눈도장을 찍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사를 나선다. 작은 네모 창으로만 보이던 바깥 풍경을 그제야 마음껏 눈에 담는다. 그중에서도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이다. 때로는 주황색, 때로는 보라색을 띠기도 하는. 솜사탕을 닮은 노을을 마주할 때면 왠지 모르게 넋을 잃은 채 바라보게 된다. 매일 마주하는 노을이지만 늘 색다른 느낌을 안겨준다. 어떤 날은 장엄함에 감탄이 절로 나오고, 어떤 날은 사람의 인생 같아서 슬프고, 어떤 날은 고생한 하루를 보낸 나를 감싸 안아주는 듯한 포근함을 느낀다.


가끔은 노을을 오래도록 눈에 담고 싶어서 한강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집까지 간다. 코로는 풀 내음을 맡고, 피부로는 달짝지근한 바람을 맞고, 눈으로는 노을 지는 풍경을 담으며 달린다. 나에겐 이 순간이 낭만이며,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이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없을 것이다. 아쉽게도 노을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집까지 절반은 달렸을까. 노을이 자취를 감추고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쯤 엉덩이가 점점 아픔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엉덩이가 말을 할 줄 안다면 노을이 졌으니 이제 자전거를 그만 타라고 말했을 것이다. 결국엔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중간 지점에서 자전거를 반납하고 집까지 남은 거리는 지하철을 타고 간다. 애석하게도 나의 낭만은 체력과 비례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자전거로 집까지 한 번에 도착한 적은 없다. 다음에는 꼭 도착하리라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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