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귤
금요일에 기뻐하고 일요일에 슬퍼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주말 부부에게는 그 무게가 더 무겁다. 나는 누구보다 주말 부부 생활에 자신이 있었다. 이미 서울과 대전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를 해봤으니 주말 부부도 거뜬히 해낼 것이라 생각했다. 여자 친구, 남자 친구라는 단어가 아내와 남편으로 바뀌었을 뿐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큰 오산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럼 2년 차 주말 부부의 눈물겨운 일주일을 살펴보자.
월요일, 슬픔을 삼키며 눈을 떴다. 어제까지 대전에 있었던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월요병과 겹쳐 가장 무력한 요일이다. 태혁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왜 서울이야? 나 왜 여부랑 같이 있을 수 없어?” 올해는 기필코 회사를 옮기겠다는 비장한 마음을 먹었다.
화요일, 친구들과 요가를 가는 날이다. 예전에는 지루하기만 했던 운동이었는데, 다시 시작해 보니 요가의 새로운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요가는 정적인 운동이 아니었다. 호흡과 온몸의 근육에 하나하나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역동적인 운동이었다.
수요일, 수요고개라고 한다. 전날 했던 요가의 근육통과 동시에 태혁에 대한 그리움이 한층 짙어져 유난히 힘든 요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요고개인 만큼 이날만 지나면 목요일쯤은 가뿐하게 넘길 수 있다.
목요일, 더위가 한풀 꺾이기라도 한 것처럼 수요일보다는 덜 벅차다. 당신이 오후 4시에 온다면 오후 3시부터 행복해진다는 어린 왕자보다도 한술 더 떠, 나는 하루 전부터 행복한 아내가 된다. 오늘도 역시 친구들과 요가를 배운 뒤 넷플릭스 ‘나는 솔로’를 보며 잠들었다.
금요일, 상쾌하게 눈을 뜬다. 금요일 업무가 제일 바쁜 날이지만 아무래도 괜찮다. 드디어 사랑하는 태혁을 볼 수 있다!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부랴부랴 서울역으로 가서 무궁화호 1403을 탔다. 기차에 앉아 머릿속에 있는 이번 주의 이야기보따리를 살짝 풀어본다.
‘오늘 꾼 꿈’
‘태혁이랑 같이 할 요가 동작’
‘불만족스러운 병원 진료 후기’
‘에이리언 비하인드 스토리‘
‘나는 솔로 대박 사건’
5일 동안 생긴 일들이 차곡차곡 잘 들어 있다. 까먹을 수도 있으니 틈틈이 메모장에 적어두거나 태혁에게 키워드만 카톡으로 보내놓기도 했다. 이번 주는 보따리가 꽤 무겁다. 그럼에도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마침내 대전에 도착했다. 나는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마중 나온 태혁이에게 안겼다. 어쩌면 나는 이 순간을 위해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품위 있고 점잖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의 앞에선 한껏 유아 퇴행적 사고와 행동을 하고 있다. 나와 태혁은 고도로 발달된 사랑은 유아 퇴행과 구별할 수 없다는 말을 좋아한다.
특별히 태혁이 준비한 참치오이비빔밥을 함께 먹으며 서로가 정성껏 싼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나갔다. 보따리가 비어갈 때쯤 같이 보기로 했던 ‘서진이네’와 ‘언니네 산지 직송’을 연달아 틀었다. 그러고도 갑자기 생각난 이야깃거리가 있어 TV를 잠시 멈췄다. 한번 멈춘 TV는 결국 검은 화면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어느새 일요일이 되었다. 기차 시간이 다가올수록 나와 태혁의 눈썹은 점점 내려가 팔자가 되었다. 시곗바늘도 돌고 돌아 기어이 저녁 8시를 가리켰다. 터덜터덜 기차역으로 이동한다. 기차 창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인사를 한다. 텅 빈 이야기 보따리는 결국 가벼워졌지만,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월요일이 되었다. 나는 다시 슬픔을 삼키며 눈을 뜬다. 투 비 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