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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드스피크 Sep 25. 2024

월화수목금토일월

귤귤

누구보다 주말 부부 생활에 자신이 있었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를 이미 해봤으니, 응당 주말 부부도 거뜬히 해낼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큰 오산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로를 가리켜 여자 친구, 남자 친구로 지칭하는 단어가 아내와 남편으로 바뀌었을 뿐,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너무 섣부른 기대 때문이었을까. 당연히 가능할거라 생각했던 1:1 교류에 실패하고, 넓디넓은 신혼집에는 쓸쓸한 민혁만이 홀로 남아있게 되었다.

금요일에 기뻐하고 일요일에 슬퍼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주말 부부에게는 금요일과 일요일이 사뭇 무겁게 다가온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그럼 2년 차 주말 부부의 눈물겨운 일과, 아내 편을 살펴보자.

월요일, 슬픔을 삼키며 눈을 떴다. 어제까지는 대전에 있었던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월요병과 겹쳐 사실상 무력함이 제일 큰 요일이다. 눈을 뜨자마자 민혁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왜 서울이야? 나 왜 여부랑 같이 있을 수 없어?” 2년째 교류에 실패한 울부짖음을 아침부터 내뱉었다. 올해는 세종이라도 기필코 옮기겠다는 비장한 마음을 먹었다.

화요일, 친구들과 요가를 가는 날이다. 분명 예전에는 지루하기만 했던 운동이었는데, 다시 시작해 보니 새로운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요가는 정적인 운동이 아니었다. 호흡과 온몸의 근육에 하나하나 오롯이 신경을 써야 하는 엄청난 역동적인 운동이었던 것이다.

수요일, 흔히 수요고개라고 한다. 전날 했던 요가의 근육통을 느낌과 동시에 민혁에 대한 그리움이 한층 짙어져 유난히 힘든 요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요고개인 만큼 수요일을 넘기면 목요일쯤은 가뿐하게 넘길 수 있다.

목요일, 더위가 한풀 꺾이기라도 한 것처럼 수요일보다는 덜 벅찬 요일이다. 당신이 오후 4시에 온다면 오후 3시부터 행복해진다는 어린 왕자보다도 한술 더 떠 하루 전부터 행복한 아내가 된다. 역시 오늘도 친구들과 요가를 배운 뒤, 넷플릭스로 ‘나는 솔로’를 보며 잠들었다.

금요일, 상쾌하게 눈을 뜬다. 금요일 일정이 제일 바빠 힘들지만 아무래도 괜찮다. 드디어 오늘이면 사랑하는 민혁을 볼 수 있다!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부랴부랴 서울역으로 가서 무궁화호 1403을 탔다. 기차에 앉아 이번 주의 이야기보따리를 가만히 살펴본다.

‘오늘 꾼 꿈’

‘민혁이랑 같이 할 요가 동작’

‘불만족스러운 병원 진료 후기’

‘에이리언 비하인드 스토리‘

‘나는 솔로 대박 사건’

5일 동안 생긴 일들을 차곡차곡 잘 넣어두었다. 까먹을 수도 있으니 틈틈이 메모장에 적어두거나 민혁에게 키워드만 카톡으로 보내놓기도 했다. 이번 주는 이야기보따리가 꽤 무겁다. 그럼에도 대전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마침내 대전에 도착했다. 나는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마중 나온 민혁이에게 안겼다. 어쩌면 나는 이 순간을 위해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품위 있고 점잖았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의 앞에선 한껏 유아 퇴행적 사고와 행동을 하고 있다. 나와 민혁은 고도로 발달된 사랑은 유아 퇴행과 구별할 수 없다는 말을 좋아한다.

특별히 민혁이 준비한 참치오이비빔밥을 함께 먹으며 서로가 정성껏 싼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나갔다. 이야기보따리가 거의 다 떨어질 때쯤 같이 보기로 했던 ‘서진이네’와 ‘언니네 산지 직송’을 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생각난 이야깃거리가 있어 리모컨으로 TV를 잠시 멈췄다. 그렇게 한번 멈춘 TV는 다시 켜지지 않고 결국 검은 화면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어느새 일요일이 되었다. 기차 타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나와 민혁의 눈썹은 점점 내려가 팔자가 되었다. 시곗바늘은 돌고 돌아 기어이 저녁 8시를 가리켰다. 터덜터덜 기차역으로 이동한다. 기차 창문을 가운데로 두고,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인사를 하며 다시 한번 이별한다. 텅 빈 이야기보따리는 결국에 가벼워졌지만,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월요일이 되었다. 나는 다시 한번 슬픔을 삼키며 눈을 뜬다. 투 비 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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