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핸드스피크 Oct 08. 2024

내가 음악 시간을 싫어하는 이유

빵호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은 음악선생님을 싫어했다. 허리까지 오는 찰랑이는 생머리를 가진 여자의 모습은 고혹적이었지만 실상은 교실이라는 감옥의 난폭한 간수였다. 그녀는 수업시간에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거나 교과서를 빠뜨린 아이들에게 돌돌말은 책으로 손바닥을 내리치며 벌을 주었다. 얼핏 보면 그 시절 학생의 본분을 다하지 않은 아이에게 내릴 법한 체벌 같지만 아이들이 싫어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매우 신경질적이고 짜증을 잘 부렸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이 많은 독신인 점도 꼬집어서 아이들은 그녀를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불렀다. 아이들은 고작 초등학생이었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수많은 방법을 동원하여 끝까지 미워하다가도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에게 불식간에 마음을 열고 마는 나이였다.


그녀는 수업 도중에 아이들의 호응이 적으면 버럭 화를 내곤 했다. 그리고 잘못한 아이를 혼내는 말이 과격해지면서 별안간 반 전체를 신랄하고 앙칼진 목소리로 비난했다. 그 당시 학교의 풍경은 하나가 잘못해도 모두가 함께 혼나는 이상한 공동체의식을 강조하는 분위기였지만 이제 막 작은 사회에 나온, 날뛰는 망아지 같이 자유로운 아이들에게 통할 리 만무했다. 아이들은 교사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그럴 때마다 주위 친구들에게 속닥거렸다.


“또 노처녀 히스테리다! 목소리 듣기 싫다.”

“시작했어! 또 시작이다아-!”


이 내용은 옆 친구에서 또 그 옆 친구로 쪽지를 통해 전해졌다. 이 쪽지를 받은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얼굴에서 하늘 위로 치솟다 못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갈매기 눈썹과 번들거리는 눈동자, 현란하게 움직이는 빨간 입술을 보노라면 그녀가 화났음을 알 수 있지만 왜 화났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쪽지를 돌리며 이런 그녀를 한심해하고 조롱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는 분노가 공포의 대상이었다. 무얼 말하는지 모를 화난 얼굴을 맞닥뜨리면 몸의 모든 세포가 단시간에 시신경으로 집중하며 뇌의 사고회로가 얼어붙게 된다. 그래서 음악 수업시간이 다가오면 환각처럼 눈가가 아릿하고 떨리는 느낌을 받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이 무언가 말하니 아이들 십여명이 교탁 앞으로 나갔다. 그 날은 준비물을 챙겨와야하는 날이었으므로 준비물 관련된 것이라 예상하고 옆 친구에게 상황을 물었다. 친구는 준비물 가져온 사람이 앞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교탁 앞에 나갔다. 내 앞에 선 아이들이 차례대로 손바닥을 내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예의 노기 띈 얼굴을 하고 고함을 지르며 아이들의 손바닥 위로 책을 세게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책이 일으킨 바람이 흐리멍텅한 내 얼굴을 날카롭게 찌르며 지나갔다. 내 머릿속은 혼란에 잠겨들었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 때 항상 같이 다녔던 친구가 다가왔다. 그 아이는 나를 가리키고 선생님에게 말했다.

그 순간 전력을 다해 두 사람의 입술을 읽었다.


“선생님! 얘는 준비물 가져왔어요.”

“그럼 얘가 여기에 스스로 나온 이유가 뭐야! 나올 만 하니까 나왔지!”


두 쌍의 눈이 내 얼굴에 내리꽂힌다. 선생님의 야차같은 얼굴에 입술이 얼어붙은 듯 열리지 않았다. 선생님은 거봐란 듯이 친구에게 화를 내며 쫓아냈다. 그리고 기어이 내 손바닥을 때렸다.


손바닥의 따끔한 통증을 통해 비로소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나는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은 사람으로 오해받았고 친구는 준비물을 가져온 나를 알기에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하려다 혼난 것이다.


일순간 억울한 기분에 사로잡혀서 시간을 거슬러 교탁 앞에 나가기 전으로 돌아가 상황을 되짚어보려 했지만 옆 친구가 말을 잘못 전달한 것이든, 내가 잘못 알아들은 것이든 그 실상은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사건은 이미 일어났으므로.


손바닥을 맞던 순간에 친구의 얼굴을 보았다. 선생님에게 혼나고 돌아가는 친구의 어깨는 축 쳐져 있었다. 가르스름하게 뜬 그 눈빛은 나를 매섭게 질책하는 듯 했다. 너 왜 말 안 했어?


자리에 돌아온 나는 얼얼한 손바닥을 한 두어번 마주잡다가 무심코 검지 손톱을 다른 손톱으로 뜯었다. 딱. 딱.


손톱이 잘려나가 핏방울이 맺히는 피부를 보고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나는 거대한 불안과 우울에 점령당했음을.


거센 감정의 파도에 저항하는 듯, 또 순응하는 듯 종잡을 수 없는 마음으로 중지 손톱을, 약지 손톱을, 그 외 손톱을 더 많이 뜯어냈다.


뚝. 뚜둑. 딱. 뚝.

딱. 딱

그 날은 가냘픈 용기와 작은 정직함이 뚝 부러진 날이었다.


그 음악시간이 장애인으로서 살아오면서 느낀 한恨의 시발점이었다. 그 때의 패배감은 자라는 내내 나를 옥죄어서, 그 후로도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내 안의 무력함이 비집고 나왔다. 어느 정도 배우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야 이것은 매우 이상하고 옳지 않은 일임을 깨달았다.


한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눈앞의 분노 처리에만 급급했던 선생님, 내 장애를 이해해주지 않았던 당신, 들리지 않는 나를 무시했던 당신, 그 모든 순간의 당신에게 다시 돌아간다면 우선 당신을 납치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빈 방에서 조명 하나만이 비추는 의자에 앉히고 두 손과 두 발을 묶고 아주 강력한 귀마개를 양쪽 귀에 꽂아줄 것이다.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는 공포를 느껴보게 하고 싶다. 나는 당신을 간간이 떠올릴 때마다 줄곧 이런 상상을 해왔다.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내가 알고 있는 지상의 모든 욕들을 가장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지적이고 논리적인 단어들로 쏘아붙여줄 것이다. 당신이 어린 나에게 한 행동이 내 생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그리고 그 때 내가 맞은 매보다도 몇 곱절의 커다란 핵주먹을 당신의 얼굴에 꽂을 것이다.


그 모든 복수가 끝나는 날, 나는 미래에서 넘어와 내 가슴 아래께보다 더 작은 친구의 눈동자에 대고 한숨처럼 말할 것이다.


미안해. 용감하게 나서지 못해서.

작가의 이전글 날개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