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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러치타임 Sep 28. 2021

그의 Ph.D가 나의 PTSD가 될 때

대환장의 중간고사


목사 양반은 Ph.D학위가 있어요. 신학 철학박사라고 하지요. '박사'인 거예요. 그는 목사에 박사에 교수, 3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해요.


   심지어 현직 교수라고 했어요. 어딘가 이상해 보였지만, 그렇게 말하니 눈 앞에서 의심할 수는 없었지요. 그는 말해요. "충만 전도사, 여기서 목사 안수도 받고, 공부도 하도록 해. 내가 도와줄게~ 박사학위 따도록 도와줄게." 충만이는 그의 말에 솔깃해요. 그야말로 육두품 출신의 서러움을 뒤집고 올라설 수 있으니까요.


   어느 날, 목사 양반은 호기롭게 시험지 답안지를 가져와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충만 전도사, 이거 채점 좀 해줘야겠어." 학생들의 답안지를 충만이보고 채점하라는 이야기예요. 그러면서  "은혜롭게 채점해줘~"라고 하며 눈을 찡끗해요.


   "네? 은혜롭게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채점은 채점인데, 은혜로운 채점은 뭔가요? '아... 그러니까 음주운전을 했는데, 면허증 검사도 안 하고 보내는 그런.. 것'을 말하는 건가요?  


   충만이는 황당함을 뒤로하고 채점을 시작해요. 채점을 하다가 경악을 해요. '아니.. 뭘 써야 점수를 주지.' 빈 공간은 수도 없이 많고,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닌 자신의 삶을 담은 '체험 삶의 현장'을 써놓은 사람들이 수두룩 한 게 아니겠어요?


   충만이는 독하게 마음먹고 사정없이 점수를 깎아요. 그렇게 깎다 보니 채점이 금방 끝났어요. 목사 양반에게 보고를 하니, 흠칫 놀라요. 이렇게 빨리할 줄은 몰랐던 거예요. 그러더니, "충만 전도사, 이렇게 점수를 주면 안 돼.. 이 사람들 어렵게 공부하는 사람들이야.."


   어렵게 공부하건, 찢어지게 공부하건 답을 안 적었는데 무슨 점수를 주나요? 아무리 '은혜롭게 보려고 해도' 개소리 써놓은 답안지에 어떻게 점수를 주나요?


   목사 양반은 중얼거리며, 스스로 다시 채점해요. 그럴 거면 처음부터 니가 하지 그랬어요. 충만이는 그 말을 밖으로 내뱉고 싶었으나, 참기로 해요.


   그러고 보니, 뭐 그렇게 어려운 문제도 아닌데, 왜 백지를 내고 개소리를 썼을까요? 충만이는 이해가 가지 않아요. 저번에 목사 양반이 출제를 할 때, 지나가던 딸의 조롱이 떠올라요. "아빠, 이 문제는 초등학생도 풀겠다." 그래요. 거의 뭐 운전면허시험 수준의 문제이었던 거예요.


   면허시험 수준의 문제를 낸 교수나, 그걸 백지로 낸 사람이나.. 이 양반들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요.


   순간 학교의 이름을 기억해내서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요. 교수 명단을 찾아봐요.


   -없어요.


  '아 그럼 이 양반이 사기를 친 건가?' 생각하다가, 시험지를 가져온 것으로 보아 이건 절대 사기는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문득 목사 양반이 입버릇처럼 떠들던 말 '평생 교수'라는 말이 떠올라요. 목사 양반은 학교에서 평생 계약했다며, 평생 교수라고, 자기를 전임교수라고 이야기했어요.


   .... '평생 교수?' 충만이는 이 단어의 느낌이 싸해요. 시험지를 다시 한번 살펴보니 "○○대학교 평생교육원"이 써져 있는 게 아니겠어요?


   이 목사 양반은 대학 교수가 아니라, 대학교 산하에 있는 '평생교육원 강사'였어요. 충만이는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박사라는 양반이 영어를 이상하게 하지 않나(아윌저스틴유), 설교시간에 바흐의 할렐루야라고 하지 않나.. 조금 이상했는데, 이제 퍼즐이 맞춰져요.


   멍 때리고 있는 충만이에게, 목사 양반은 다가와 말해요. "충만 전도사, 전도사도 박사 따야지. 나처럼 평생 교수도 하고 목회도 하고, 세계를 다니며 부흥사도 하고.."


   목사 양반의 자랑스러운 Ph.D 연설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요. 충만이는 이제 어떤 목사가 박사라고 하면 믿고 거르기로 했어요. 헛소리에 전두엽을 하도 맞아서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가 왔거든요. Ph.D에 P자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고 손발이 어지러워져요.


   충만이는 교회에서 잘 버텨나갈 수 있을까요?


  -오늘의 동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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