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잘 하는 내 짝꿍은 멍청한 질문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너네 나라 말로 달라붙다는 뭐야?"
나는 반찬의 매운 양념을 숟가락으로 긁어내며
"@@." 툭 던진다.
내가 양념을 긁어내는걸 방해하는 짝꿍은 내가 양념을 긁어내는게 자신을 방해한다는 듯이 내 손을 누르고
"확실해?" 하고 묻는다.
"밥 다 먹고 야자시간에 사전 찾아보든가."
"잘 들어. 달라붙다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오한 단어야.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달라-, -붙다'여서 서로 다른걸 누군가 억지로 붙여놓은 것 같지만, 사실 적어도 하나가 다른 것에 끌리듯이 다가가 붙어버린 거라고. 그걸 살리는 단어가 있어?"
"@@는 그런 단어는 아니야. 그런 것까지 딱 맞는 단어가 있겠냐? 내 손 좀 놔줄래?"
"그럼 내가 너네 나라 말로 '달라붙다'를 만들래! 협조해줄거지?"
협조를 안하기엔 내 배가 너무 고팠다. 그러고보니 얘 1지망이 언어학과랬나. 저번에 너 과는 어디 쓸거냐고 물었더니 무슨무슨 언어학과도 아니고 언어학과야, 라고 해서 그게 뭐냐고 물어보니까 설명이 제법 거창했다. 그래서 적당히 흘려 들었는데 저런거 만들면서 노는 학과인가보다. 성적을 깡패로 선생님들을 휘두르는 내 짝꿍은 오늘 야자 담당 선생님께 양해란 이름의 권력 남용으로 날 끌고 빈 교실에서 단어 만들기 놀이를 했다. 나도 양념류 외엔 나름 '한국 사람 다 된' 외국인인지라 단어를 찾는건 인터넷 유의어 사전이 더 편리했고, 나는 미묘한 어감 사전이 되어 짝꿍의 필사 대상이 되어 주었다. 비슷한 단어는 제법 찾았지만 애시당초 우리나라 인삿말도 모르는 짝꿍이 원하는 수준의 완성도를 내기는 어려웠고, 나는 한국지리에서 왜 우리나라 호수에 빠질 것 같은 이 땅 어디에 푄 현상이 일어나는지 복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슬슬 짜증이 났다.
그 때, 핏-하는 소리와 함께 학교 전체에 정전이 일어났다. 야자실에서는 꺄아 하는 비명소리가 간간히 들렸지만 선생님이 손전등을 쓰라고 핸드폰을 나눠줬는지 곧 조용해졌다.
"우리도 핸드폰 돌려달라고 하자. 우리를 까먹으셨나봐."
짝꿍은 역시 또 멍청하게 "나 라이터 있어."
"라이터로 어떻게 사전을 읽어. 눈도 나빠지고 잘못하면 다쳐."
"가면 또 모여있어야 한다고 교실로 다시 못 내려오게 할 것 아냐."
"그럼-"
"-그럼 너랑 이렇게 둘이 못있잖아."
아, 머릿속에 라이터가 탁! 켜졌다.
초에 가져대면 옮겨가는 그런 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