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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린 May 30. 2022

달력에 스티커를 붙이면

 유자청을 듬뿍 퍼서 탄산수에 휘휘 저어 마신다. 그리고 달력에 유자 모양 스티커를 붙인다. 물론 만든 사람은 유자 모양 스티커라고 붙인게 아니겠지만. 뭐 오렌지나 귤 같은걸로 여기면서 만들었겠지. 하지만 나는 이 스티커를 유자라고 여기며 달력에 붙인다.

주임, 또 유자차 마시면서 귤 스티커 붙이네. 나한테 까일 때마다 붙이는거 아니지?

 아녜요.

 엇? 그럼 내가 범인인가? 하하

 그냥 별 생각 없이 붙이는 거예요.

 회사 사람들은 내가 스티커를 붙이는 것에 의미부여를 한다. 그 의미에서 내 한가한 취미생활은 전혀 한가로워지지 않는다. 나는 큰 일을 찬찬히 해결하는 일중독이 되기도 하고, 모종의 증거를 잡는 무서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이 사람들, 싸구려 이야기를 너무 많이 봤어. 총평은 꼼꼼한 인상 정도 같으니 내버려 둔다.

 유자차 한 병을 비웠더니 입이 내내 달다. 친구의 추천으로 작두콩차를 장만했다. 동그란 콩들이 올줄 알았는데 길고 쭈글쭈글하고 납작한 것들이 잔뜩 왔다. 콩깍지를 말린건가? 째로 넣고 우리니 구수하고 좋다. 여러번 우릴 수 있다나.

 달력에 유자라고 붙인 귤스티커보다 작두콩이라고 붙인 완두콩 스티커가 더 많아지자, 내가 제일 많이 듣는 말은

 색깔이 다르잖아

 가 되어 버렸다. 솔직히 좀 어쩌라고 싶지만

 갈색 콩스티커를 어디서 구해요.

 하고 만다.


 내 생일 전엔 항상 상태 메세지에 '선물은 차로 받습니다'를 써놓는다. 지켜주는 사람은 없지만. 회사에서는 돈을 걷어 케이크를 사고 친구들은 괴상한 물건들을 주기 바쁘니까.

 생일 날 케이크 불을 후 끄고 전등 불을 켰는데

 다들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갈색 볼펜, 갈색 색연필, 갈색 사인펜... 모으니 갈색이 한아름.

 이런 오지랖에 푸핫 하고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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