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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젤리 Feb 17. 2023

나도 몰랐다, 아기 약 어떻게 먹이는지.

아프냐? 나도 아프다.

약대 졸업 후 나는 줄곧 병원 내 약국(원내약국)에서만 근무했다. 외래약국에서 할 때나 응급실 퇴원약을 내어줄 때 아픈 아기의 보호자(부모님)에게 복약지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통 어떤 작용을 하는 약인지 설명한 후 복용 횟수, 복용법(식전/후 또는 공복), 특이사항(보관방법이나 기타 주의사항)에 대해 알려주었다. 6-7세 이하 소아환자의 약은 물약(시럽)이나 가루(분쇄한 알약 또는 건조시럽) 형태로 조제하게 된다. 나는 보호자에게 약봉투를 건네주면서 실제로 가정에서 아픈 아기에게 어떻게 약을 먹이는지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기를 키우거나 가까이서 살펴볼 기회가 없었던 나에게는 아기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무지 혹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물론 나 살기 바빠서 그다지 관심이 없던 것도 맞고.


여하튼 그랬는데, 나도 아기엄마가 되었고 아기가 6개월에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감기에 걸(아기가 모체로부터 받은 면역력은 생후 6개월 정도까지 유지된다고 한다). 시작은 기침이었다. 하루에 한두 번 하던 기침이 날이 갈수록 횟수가 잦아져 바로 집 근처 소아과로 달려갔다. 목감기라고 했다. 단 3일 치 약을 처방해 줄 테니 3일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약국에서 약을 받아보니 가래약항히스타민제+콧물약이었다. 당시에는 '콧물은 없는데 왜 콧물약을 주셨지?' 의아했는데 바로 다음날부터 아기가 맑은 콧물을 줄줄 흘려 의사 선생님의 혜안에 감탄했다. 저녁 시간에 소아과를 방문한 터라 아기를 씻기고 나서 마지막 수유 후 약을 먹이면 되겠다 생각했다.


이전에 아기에게 약을 먹여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2개월 차 폐렴구균 예방접종 후 열이 오른 것이다. 당시에는 아기가 워낙 어리기도 했고 이미 잠든 상태여서 해열제 용량만큼 티스푼(이유식 시작 전이어서 아기용 스푼도 없었다)으로 떠먹이니 아기도 별다른 저항 없이 먹었다. 그때를 생각하며 이번에도 문제없겠지 했는데 웬 걸. 아기는 그때보다 인생을 3배나 더 살았고 이제 좋고 싫음이 명확해진 것이었다. 병동약국에서 소아 영양수액 조제하던 때를 회상하며 일회용 무침주사기로 정확한 용량의 약을 덜어서 티스푼에 옮겨 입에 넣어주었다. 결과는? 아기 그.대.로. 뱉어버렸다. 어라, 이건 내 예상과 다른데. 어쩌지? 약국에서 받아온 시럽 양이 그렇게 넉넉해 보이지 않아서 다시 줄 수도 없고 아직 먹일 약이 나 더 남있었다. 일단 패스. 두 번째 약으로 간다. 이번에도 똑같이 주사기에 덜었다가 티스푼으로 떠먹여 주었는데 절반은 뱉어버렸다. 아니, 이러면 내가 주사기로 용량 맞춰 먹이는 의미가 없잖니 ㅠㅠ 하, 어쩌지. 일단 첫날이니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하고 아기를 재웠다.


다음날 아침, 약 먹일 시간이 되었다. 약을 어떻게 먹일지 고민하다가 이전에 병원에서 로타바이러스 예방접종 때 주사기 채로 볼 안쪽에 넣어 약을 조금씩 흘려주던 게 생각이 났다. 이번에는 나도 그렇게 해봐야지 했는데 입 안 양쪽에 약을 넣어도 아기는 약을 계속 뱉어냈다. 설상가상으로 두 번째 약을 먹일 때에는 아예 입을 벌리지도 않았다. 똑똑해 이대로는 아기에게 약을 먹이지 못해 감기가 낫지 않을 것 같아 다급히 '아기 약 먹이는 법'을 검색해 보았다. 대략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1. 젖병(젖꼭지)으로 먹이기
2. 볼 안쪽으로 넣어주기
3. 특수약병(쭙) 사용하기


첫 번째로 아기에게 젖꼭지를 물린 후 약을 넣어주는 방법인데 자칫하다 젖병거부로 이어질 수 있다길래 패스했다. 두 번째, 약을 볼 안으로 넣어주는 게 보편적인 방법인 것 같으나 우리 아기는 다 뱉어버려 실패. 세 번째로 쭙이라는 다회용 실리콘 약병을 사용하는 방법인데, 당시에는 펀딩 기간이 아니라 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쭙으로 시도해도 우리 아기는 거부했을 것 같다. 색을 해봐도 별다른 방법이 없길래 그냥 볼 안쪽에 넣어주는 방법으로 계속 시도했다. 아기가 입을 안 벌리면 억지로 입을 벌려서 약을 넣어주고 약을 뱉지 못하게 입을 억지로 닫으면 아기는 사레에 들려 켁켁거리다 결국 뱉어버리기 일쑤였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아기가 안쓰럽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3일 후 다시 병원에 갔는데 아기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약을 그렇게나 안 먹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의사 선생님서 아기들은 감기가 심해지면 중이염이나 폐렴으로 쉽게 다며 항생제도 먹이자고 하셨다. 선생님께 아기 약 먹이는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더니 먹여야 하는 약의 가짓수와 맛에도 상당히 신경을 써주시며, 항생제는 맛이 쓰니 제일 나중에 먹이고 나머지 두 약은 달달한 편이니 괜찮을 거라 하셨다. 주말이 끼어있어 다음 진료는 4일 후에 보기로 하고 약국으로 갔다. 복약지도 하는 젊은 남자약사을 보며 '저분께 아기 약 어떻게 먹여야 할지 물어볼까?' 싶다가도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그만두었다.


이제 아기와 약 먹이기 전쟁이 시작되었다. 약을 제대로 먹이지 않다가는 감기가 심해져 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다. 당장의 죄책감이나 괴로움보다는 아기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기로 했다. 아기입원해서 수액줄 꽂고 있는 것보다 지금 억지로라도 약을 먹이는 것이 훨씬 낫다고 되뇌었다. 약은 이전과 똑같이 주사기로 정확한 용량을 덜어내고 버둥거리는 아기를 붙잡아 강제로 아기의 입을 벌린다. 아기가 혀를 움직여 약을 뱉어내려 하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혀누르고 주사기를 입 안쪽으로 깊숙이 넣는다. 두세 번에 걸쳐 조금씩 약을 넣어주니 약이 목구멍으로 바로 넘어가 아기가 꿀떡꿀떡 삼키게 되었다. 어쩌다 사레가 들리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약을 먹일 수가 없는 걸. 괴로워하는 아기를 보며 생각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우리 아프지 말자 ㅠㅠ


억지로라도 약을 먹인 덕분에 아기는 점차 회복했다. 아기가 아프면 옆에서 지켜보는 게 너무 괴로워서(물론 약 먹이는 것도 힘들다) 그 이후로는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엄청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나중에 기관생활을 하면 뭐든 옮아올 수 있고 아기들은 아프면서 성장하는 법. 고로 엄마의 아픔은 숙명인가 보다. 그래도 우리 연약한 아가들 모두 아프지 말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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