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피곤해서 책상위 꾸깃한 누런 종이봉지속에 틀니를 곱게 담아둔 ‘김 화소‘씨. 밤이되면 신발만 벗고 자는 것이 아니라, 틀니도 물컵에 곱게 빼두고 잔다. 일이 생기려고 그랬는지, 너무 피곤해서 그냥 대충 둔 것이 화근이었다. 그의 형은 2급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날따라 부지런한 형은 안개낀 듯 보이지 않는 집구석을 청소하고, 집안에 쌓여있는 이런저런 쓰레기들을 모아 마당에서 소각하였다. ’내 눈은 비록 안보이지만, 한사람 몫은 하고살아야제. 하모.. 하모...‘ 누런 종이에 싸 둔 울퉁불퉁한 것이 손에 잡힌다. 불타오르는 쓰레기 더미속으로 가볍게 던져진다. 매캐한 연기가 눈을 찌르지만, 감각이 둔해진 눈에서는 눈물이 날리 없다. 사춘기시절 받은 '아주 조금은 보이는' 이상한 장님이라는 비아냥에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이깟 연기의 매콤함에 터져나올리가 만무하다. 어슴프레 잠이 깬 김 화소씨는 아차!하는 마음으로 쫓아가 보았지만, 이미 자신의 틀니는 입안에 넣기에는 너무 빨갛게 달아오른 순간이었다.
“하하핫! 원장님! 틀니 하나 새로 하러 왔습니다.”
호탕하게 웃는 소리가 낯익다. 주섬주섬 챠트를 꺼내본다. 이런, 틀니 만들어드린지가 이제 2년밖에 안되었는데, 무슨 문제가 생긴건가? 좋은 관계의 김 화소씨였는데, 어떤 불만을 말씀하시려는걸까? 오실 이유가 없는데.. 챠트에 휘갈겨쓴 나의 글씨가 보인다. ‘이 분은 치료비를 한번에 내기 어려우시니, 원하시면 수개월로 분할납부가 되게 해드릴 것. 소개자 김 선처씨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음. 2013.4.25.
“흐.. 흠... 네, 잘 지내셨죠? 전번에 버스정류장에서 인사드렸었는데, 그러고는 오랜만이시네요.”
“네, 틀니 새로 해주세요. 밤에 잘 때 책상위에 두고 잠들었는데, 그만.. 종이에 싸둔게 잘못이죠. 제 형님이 2급시각장애인이거든요. 아주 조금 보여요. 거의 안보이죠. 그런데, 아침에 쓰레기를 마당에서 태우는데 그만, 제 틀니를 거기에 넣어버린거에요.. 어쩌겠어요. 그냥 하나 새로 만들어야죠! 하하핫!”
명랑한 목소리가 진료실을 가득 채운다. 치아보험도 든 것이 없으시고, 한두푼 하는 틀니도 아닌데 참 난감하게 되셨구나.. 안그래도 50도 안된 나이에 틀니를 해드리면서 마음이 꺼림직 하였는데, 이를 어쩐다.. 틀니가 불타버린 ‘화소’씨의 아버지도 시각장애인이시다. 화소씨야, 운 좋게 자신의 얼굴을 거울을 통해 볼 수 있지만, 아버지는 평생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본 적이 없고, 장남인 그의 형 또한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본적이 없이 같이 평생을 살았다. 내가 억장이 무너진 것은, 화소씨의 조카 또한,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꼬박 내리 3대가 유전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지게 된 것이다. 아빠는 아들의 얼굴을 본 적이 없고, 할아버지 또한 그 귀엽다는 손자의 보들보들한 얼굴도 주름진 손으로만 매만져 “볼” 수 있었을 따름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때면, 신께 부탁하여, 태양을 단 며칠만 꺼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되면, 비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점자를 통해 글도 읽어줄 것이고, 잘 정돈된 물건들을 빛이 없이도 잘 찾아 쓰며 그들이 더 대우받을 것이다. 바보같은 상상이 끝날 즈음에, 나의 손에는 수천만 화소의 카메라를 자랑하는 스마트폰, 버튼이 없어서 시각장애인에게는 오히려 더 불편한 터치식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스마트 티비는 이제 HD 초고화질을 넘어, UHD 울트라 고화질을 선전하고 있다. 선명하다못해, 보기싫은 배우의 땀구멍까지도 보여주는 징그러운 대형 HD 티비는, 눈을 가진자를 더 호사스럽게 살게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적당한 선에서 개발을 늦추고 그 비용을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을 개발하는데에 들이려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방송촬영용 카메라는 사회의 소외받는 이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유희와 맛집을 보여주는데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눈은 보이지만, 봐야할 것을 보지 않는 직무유기의 눈이다. IT기기 중, 시샘을 받는다는 아이폰이지만, 세심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장치가 있다고 한다. 이로인해 수많은 시각장애인들이 감사해한다고는 하나, 그역시 큰 돈이 있어야 살수있는 물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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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 코끼리 만지듯. 눈 뜬 장님. 눈은 마음의 창. 이런 모든 말들이 시각장애인에게는 상처를 주는 말입니다. 반드시 이 표현을 쓰지 않아도 뜻을 전할 수 있습니다. 수년 전에, 장애인이 노점의 자리를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모양을 보고, 옆의 사람이 장애인이 들리는 앞에서, ‘병신이 육갑하고 있네’ 라는 표현을 써서 상처받은 장애인이 실제로 자살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우리만 더 잘 보려고만 하기 보다는, 시각 장애인 분들도 함께 소외되지 않도록 말이라도, 마음이라도, 사소한 환경이라도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길 위의 보도블럭에 오돌도돌 튀어나온 노란 보도블럭. 시각 장애인을 위한 장치입니다. 지팡이로 드르럭 드르럭 만지며 가라는 배려이지요. 오늘 출근하면서 보니, 그 노오란 올록볼록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도블럭위에 좌판행상 아주머니들의 물건들이 가득합니다.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로 세상을 더듬는 것 처럼, 저도 인생이란 무엇일까, 세상은 왜 이렇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가득한 것일까를 사춘기 소년처럼 생각하면서, 더듬더듬, 드르럭 드르럭, 더듬더듬, 드르럭 드르럭... 페친 여러분들의 포스팅이 보도블럭의 오돌토돌한 돌기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