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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May 09. 2018

[낯선 문신이 있는 엑스선실]


[ 문신 환자 : 치과 엑스레이 찍는 중의 사진입니다.]

“원장님! 이가 너무 아파요오~! 근데 제가 지금 술 한잔 하고 왔습니다. 하하하.."

일이 늦게 끝나셨는지, 예약도 없이 야간진료 마감시간에 맞추어 오셨습니다. 온 몸에 치렁치렁 줄자며, 드라이버같은 공구를 허리춤에 휘감고 오신 걸로 보아서는, 어디선가 공사를 하다가 오신 것도 같네요. 웃는 인상이 좋으신 기술자님이십니다. 술 먹고 진료받으러 오시면 안되는데.. 공사일하시다가 반주로 좀 드셨나보네요.

“아.. 일단 앉아보세요. 여기가 많이 아프세요?”


힐끔 쳐다보니 팔에 험악한 물고기가 한마리 그려져 있고, 아마도 ‘초전박살’이라고 써 있는 것 같습니다. 용인지 뭔지 그림도 많네요. ‘으이구, 무서워라.. 원하는 치아를 빼드리고도, 나중에 이를 잘못뽑았다고 괜스레 시비를 당하는 거나 아닌지 몰라..’ 속으로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진료의자에 앉아계시는데, 제가 용기내어 기술자님 팔뚝의 문신을 살짝 손바닥으로 부비부비 만져보며 말했습니다. 보드랍더라구요. (좀 변태스러운가요? ^^)


“(침을 꿀꺽 삼키며 팔을 만져본다.) 아저씨! 저는 이 험악한 문신이 너무 무서워요!”


“(머쓱해하며) 아.. 원장님.. 그.. 그렇죠.. (씨익웃으며 큰소리로) 죄송합니다! ”


“아이구.. 기사님이 죄송하실게 뭐 있나요. 그건 아니죠.. 제가 아저씨 안무서워해도 되죠? 그럼 진료 보기위해서 마취할게요? (마취주사에 앰플을 넣고 준비한다.)”


“(놀란 눈으로 주사바늘을 보며) 네, 원장님... 사실 저는.. 치과에서 진료받는게 더 무서운데요? 원장님이 더 무서운데요? 하하하!”


“그럼 우리 서로 무서워하지 맙시다. 오늘은 술 드셨으니, 그냥 가시구요, 다음 번에 나와서 진료보세요, 그리고 이렇게 자꾸 이를 빼려고 하시면 안됩니다. 잘 닦으시구요. 정기적으로 검진 받으세요. 벌써 이가 많이 없으시잖아요..”


“넵! 죄송합니닷!”


 문신. 타투. 몸에 무언가 새겨넣는 것이지요. 신체의 피부를 하나의 메세지 전달 도구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2015년을 사는 한국에도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상이 유독 빨리 바뀌는 한국사회에서는, 두루마기를 입고 다니는 할어버지부터, 힙합 랩을 부르는 손자까지 같이살고 있어서, 그 어느때보다도 가치관의 충돌이 많이 일어납니다. 저의 어머니는 논어와 공자, 유교사상 뭐 이런것에 목숨거는 분이셔서, 저는 문신을 한다는 것을 꿈도 못꾸고 자랐습니다. 호기심에 힐끔힐끔 조그맣게 하고싶다는 생각도 해봤지요.

 
 마침 방금 캐나다인이 오셨네요. 짧은 영어로 물어보니 반팔티의 왼쪽 어깨부분을 올려보여주십니다. 불주사 맞던 자리에 단풍나뭇잎 (Maple Leaf) 문신이 붉게 그려져있네요. 미국과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아, 미국인이라고 사람들이 묻는게 싫어서 캐나다 국기를 어깨에 새겼답니다. 매우 신사적인 남자분이셨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이미 대중화 되어있고, 간혹 더러운 타투샾도 있지만, 위생적인 곳도 많아서 본인은 거기서 했다고, 전혀 캐나다에서는 문제되는게 아니라고 하십니다. "No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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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고 겁많은 저는 후회할까봐 걱정되어 문신을 해본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란 항상 변하기 마련이며, 문화도, 트렌드도 변하기 마련이니, 영구적으로 자기몸에 표식을 한다는 것은 큰 책임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아직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사람의 오지랖 많은 특성에, 아직도 문신은 좋은 안주거리입니다. 한마디씩 다들 하겠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사실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 할 것이 아닙니다. 대중의 편견으로 좋지않은 시선을 받는다면, 그것을 이겨내는 것도 본인의 몫이겠죠. 그리고 예전에 나쁜행동을 하던 사람들이 주로 타투를 많이 했었다면, 앞으로는 타투를 한 사람들이 좋은일을 많이 한다면 타투에 대한 인식도 당연히 바뀔 것입니다.

  타투는 역사속에서 본인의 높은 지위를 나타내는 표식이 되기도 하였고, 죄인의 낙인으로 새겨넣는 경우도 있었지요. 그저 좀 특별한 화장을 본인 몸에 영구적으로 새겨넣은 것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겁을 주기위해서 의도적으로 넣은 타투가 아니라면 저는 별 문제될 것이 아닌것 같아요. 하지만, 일본사우나에서도, 문신 한 사람은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약간의 불편함을 본인이 감수할 자신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겠지요.


 ‘몸이 도화지냐?’ 라는 어릴적 농담이 있었습니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겠지요. 문제는 도화지에 남에게 겁박을 주려고 혐오스러운 그림을 그리느냐, 돌아가신 어머님의 마지막 유언을 새기느냐, 컴플렉스였던 상처를 덮을 목적으로 덧칠을 한 문신이냐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메세지를 주고 싶은 거였을까. 통증을 견뎌내면서까지 새기고 싶었던 메세지는 무엇이었을까. 진지한 성찰이 담겨있는 타투는 때로는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급격하게 변화는 세상에서, 이제는 멀미가 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별로 좋지 않은 편견일지라도, 그냥 좀 천천히 바뀌어가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저도 속칭 ‘꼰대’가 되어가나 봅니다. 문제는 우리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의 가치관이나 철학이 없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저 문신은 나쁘다고 어른들이 말했으니 나쁜거고, 거꾸로, 문신이라는 것을 이유없이 막는 어른들에 대한 일탈과 반항의 의미에서 더욱 과감하게 시도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스스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많은 고민을 주변사람들과도 하면서 문신을 하기로 결정한다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간섭할 이유가 없지요.


 어느새 저는, 환자의 과거로 돌아가 용문신을 온 몸에 휘감은 20년 전 패기넘치는 청년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됩니다. 세상을 다 가질만큼 큰 포부로 이 문신기사님은 통증을 참고 새겼을 즈음, 저는 책상머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겠지요. 나도 세상을 좋게 만들어 봐야지!.. 이렇게 서로 마흔이 넘어 만난 우연한 치과의사와 환자와의 만남에서, 세상은 참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세상을 초전박살 내겠다는 치기어린 포부도, 선량한 사람으로 뭔가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의지도 다 사그러지고, 이렇게 볼품없는 사람으로 서로 만난 것이 우습기도, 슬프기도 합니다.


 문신. 세상에 태어난지 18개월 된 딸아이의 다리에 생긴 불치의 커다란 붉은 모반(기형으로 생기는 점)을 위로하기 위해서, 엄마 아빠가, 다리에 똑같은 모양으로 모반문신을 새겨넣은 이야기가 있습니다.아이가 만져보며, "하하하, 똑같아!" 하고 말했다네요.

[사진2]

 

 그리고 이런 문신도 있었습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 마지막 남긴 메모를 필체 그대로 옮긴 문신. [사진3]"I love you~ be good!! Mom"


(사랑한다 잘 있어 –엄마가)

제 팔뚝에는 아무 문신이 없고, 
제 다리에는 감사하게도 아무 문신을 새겨넣지 않아도 되는것이 한편으로는 감사하고, 어딘지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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