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관우입니다. 전화바꿨습니다. 네.. 저희 병원에서 일했던 직원 맞는데요.. 네? 아.. 그 직원 말이 맞습니다... 네.. 네.. 맞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수고하세요”
“아니, 요즘 종종 면접 온 분들이 이력서에 써 온 내용과 사실이 다른 경우가 많아서 확인차 전화드렸습니다. 간혹 경력을 다르게 적어오시거나 하는 분들이 있어서요. 원장님, 실례했습니다.”
타 지역에 있는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화려한 이력서와 언변, 외모에 감탄하며 직원채용을 했답니다. 나중에 사실을 우연히 알게되었는데, 이력서의 내용이 상당부분 거짓이었다네요. 그 후론 가급적 확인을 한답니다. 사실 요즘은 비일비재한 일입니다.
가만히 면접자의 이력서를 읽어보노라면, '참 쓰느라고 애썼다..' 하는 마음이 듭니다. 사진을 붙이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요즘은 ‘자소서’가 아닌, 자조섞인 어투로, [자소설]이라는 말로 쓴다지요. 그야말로 자기 소개 '소설'을 써야 붙는다는 말이지요. 이런 것을 상담해주는 컨설팅 업체도 있다고하니, 이쯤되면, 자기소개서가 아니라, 남의 소개서가 되겠네요. 요즘은 자기의 실상을 왜곡한 만큼 합격률이 높아진다나요. 이력서에도 성형과 아주 진한 화장을 하는거죠.
25년전 쯤, 경험삼아 저도 노가다(막노동)를 하겠다고 나선 적이 있습니다. 딱 일주일만 할 생각에 여기저기 서울에서 노가다 일하는 곳을 알아보았습니다. 일주일만 하겠다고하니 구해지질 않았습니다. “에이, 이 요령없는 놈아, 한 달을 일한다고 먼저 말하고, 그리고 나서 일주일 될때 쯤에 다른 사정이 생겼다고 그만둘 생각을해야 일을 구할수 있어. 맹추야.”
그래도 어떻게 거짓말을해요?
“사회생활 하려면 어쩔수 없는거야.” 노가다 경력이 있는 아저씨와 형들이 친절히 알려주셨었죠. 결국 그렇게 저도 남을 속이고, 막노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소중한 인생의 자산이지요. 그때 그 거짓말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로 마룻바닥에 누워 며칠을 고민했던 시간, 그 마루의 천정의 모습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그 때부터 일그러진 세상과 일그러진 제가 서로를 탓하며 지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내가 구부러지는 것은 세상이 이미 너무 많이 구부러져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살려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했고,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제가 제정신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원장실에 앉아 스물이 갓 넘은 어떤 분이 두고 간, 위선과 거짓이 가득한 이력서를 읽어보면서도, 씁쓸하기 보다는, ‘그래, 사회 초년병인 당신들이 무슨 죄겠소, 이 사회가 문제야. 진실보다는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할때, 성공한 사람들이 더 많았던 사회의 경험과 문화가 당신들을 오염시켰을 따름이오.. 나도 이제 기성세대이니, 내 책임도 없다고는 못하겠어요. 구부러진 세상을 반듯하게 펴보려고 난들 노력한 게 없네요.’ 하며 미안한 마음까지 듭니다.
뒤적뒤적 찾아보니, 해외의 기업은 이력서에 본인사진, 성별, 나이, 가족관계, 주민번호 등등 사적인 것은 적지 않게 되어있고, 오히려 성별, 나이, 사진은 차별적 요소가 있어서 기입을 금지하는 곳도 있답니다. 모두가 공정한 기회를 가진 사회로 나아가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편견과 차별의 잔재들이 아직 우리 문화와 생활 속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내가 손바닥만한 병원을 운영한다는 하나의 유치한 권력으로 채용하고 말고를 결정하고, 그런 이유로 면접 온 사람들을 가늠하고 하는 것이 참 고통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한 사람은 6장이 넘는 자신의 이력서와 첨부서류를 준비해왔는데, 나는 병원입장에서 우리병원의 복지상황이나 근로조건을 문서로 만들어서 한 장이라도 손에 쥐어드려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고, 증명사진도 비용이 많이 들텐데 싶어서 면접을 온 사람들에게 만원정도의 돈을 차비명목으로 봉투에 준 적도 많습니다. 채용하지 않을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랬었죠.
사실 따지고 보면, 이력서라는 것은, 너의 과거로 미루어 짐작하여 미래를 예측하겠다는 거죠. 그건 지금까지 방황하던 한 사람이 새롭게 마음을 먹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한동네 사람들이라면, 무슨 이력서가 필요하겠습니까.. 500년 전부터 이력서라는 것이 존재했다고 하네요, 최근에는 유투브를 이용해 이력서를 만들기도 한다니, 적응하기에도 멀미가 나는 변화의 디지털 세상입니다.
이제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빅데이터(개인의 정보)들이 많이 쌓이고 분석하는 기술이 발달해서, 우리들이 지난 5년동안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른 것으로 그 사람이 좌파인지, 우파인지를 분류하고, 성실한지 아닌지도, 사치스러운지 검소한지 그간의 그의 카카오스토리나 다른 SNS의 기록을 참고하여 자동으로 판단한다고 합니다. 이력서가 필요없는 세상이죠. 새로 취업할 회사에서는, 이미 그 사람에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그의 인터넷등의 행위를 통해, 그의 쇼핑성향, 학교에서는 결석이 몇번이었고, 지난 회사에서는 결근이 몇번이었는지 등 여러가지를 파악한 자료를 가지고 채용결정을 한다고 하네요. 참으로 편리하고도 무서운 세상입니다. 언젠가는 자식들에게 우리 모두가, “그런 글에 좋아요를 누르면, 너 취업 안된다.” 하는 날이 머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상념 끝에, 이력서 (신발을 신고 걸어온 기록)라는 말에 충실하게 생각해봅니다. 취업할 때는 이력서에 한줄 더 채울 문구를 만들기위해 자격증도 따고, 스펙도 쌓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내 인생 전체의 이력서를 스스로 쓴다면, 어떤 문구를 한줄 한줄 적어갈 수 있을 것인가. 남에게 보이기 위한 빈 칸을 채우는 것이야 위선적 마음에 휘갈겨 쓸 수가 있겠지만, 내 스스로가 읽어내려갈 내 이력서를 쓴다면 나는 충실하게 살았던가. 누구의 말처럼, “인생을 낭비한 죄”는 없었던가. 타고난 이상주의자에 어설픈 완벽주의자라서, 스스로를 괴롭히기만 하는 비오는 날입니다. 좋은 한 주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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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관: 네 죄를 알렸다(You know the charge).
빠삐용: 나는 무죄입니다(I'm innocent). 나는 그 포주를 죽이지 않았습니다(I didn't kill that pimp). 증거도 없는데, 억지로 내 죄를 만든 것입니다 (You couldn't get anything on me and you framed me).
재판관: 그것은 진실이다(That is quite true). 하지만 너의 진정한 죄는 포주의 죽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But your real crime has nothing to do with a pimp's death).
빠삐용: 그러면 무엇이 내 죄란 말입니까? (Well then? What is it?)
재판관: 네 죄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흉악한 죄다. (Yours is the most terrible crime a human being can commit).
너의 죄목은 청춘(인생)을 낭비한 죄다. (I accuse you of a wasted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