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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프로 Aug 27. 2021

EP5. 변호사님도 변호사 나오는 드라마 보세요?

검사님도 검사 나오는 영화 봐요?


“변호사님도 변호사 나오는 드라마 보세요?”, “검사님도 검사 나오는 영화 봐요?”


검사와 변호사로 일하면서 100번도 넘게 받은 질문이다. 아니, 비밀의  봤어?”라는 질문만 100번은 받은 것 같다.


황시목 검사 뒤에 쌓여 있는 기록이 현실감 있다 [출처: TVN '비밀의 숲' 캡처]


요즘에는 검사나 변호사가 나오는 작품이 너무 많아서 다 꼽기도 어려울 정도다. 올해 상반기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드라마 ‘빈센조’에서도 송중기 배우와 전여빈 배우가 변호사로 열연했다.


[출처: ‘빈센조’ 공식 홈페이지]



내가 제일 열심히 본 법정 드라마는 ‘굿 와이프’인데 전도연 배우와 김서형 배우의 패션이 정말 멋졌다.



[출처: TVN '굿와이프' 캡처]


이제는 법조인이 직접 드라마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김웅 부장님이 쓴 ‘검사내전’이 드라마화되었고, 문유석 판사님은 직접 ‘악마판사’와 ‘미스 함무라비’ 극본을 썼다.


[출처: ‘검사내전’ 공식 홈페이지, ‘악마판사’ 공식 홈페이지]


제목의 질문에 답을 하자면 물론 나도 검사나 변호사가 나오는 드라마, 영화를 본다. 아는 영화감독님이 나에게 “재판할  정말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고 하나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지금까지 수천 번의 재판에 참여했으나 한 번도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검사든 변호사든 누구라도 한 번은 할 법 한데(?) 여하튼 나는 들어본 적은 없다. 재판장님 존경하는 마음이야 왜 없겠냐만은 너무 유명한(?) 표현이라 오히려 꺼내기 부끄러운 걸까.


사실 재판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보다 정적이고 딱딱하다. 벌을 날리거나, 예상치 못한 증인이 극적으로 등장하거나, 검사나 변호사의 화려한 언변으로 재판 결과가 뒤집히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드라마 제작 자문을 하거나 영화계에 있는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실제 재판은 어떻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때마다 내가 하는 답은 정해져 있다. 이창동 감독님 영화 버닝 보셨어요? 거기에 형사 재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재판이랑 99.9% 같아요.


원래도 이창동 감독님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재판 장면은 참으로 감탄했다. 그 무미건조함(?). 마치 일하러 법원에 온 기분이었다. 재판정의 구조와 재판부, 검사, 피고인의 위치, 심지어 교도관이 앉은 위치까지 실제와 동일한 건 기본이고, 재판장의 말투와 목소리, 좌배석과 우배석의 표정과 자세, 법원 계장과 실무관의 행동, 모두진술을 하는 검사의 무표정한 얼굴과 딱딱한 목소리까지 정확하게 재현했다. 더욱이 재판장과 검사, 변호사의 워딩이 실제 재판 그 자체였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찾아봤는데 다시 봐도 놀랍다. 검사가 모두진술로 읽는 공소사실마저 공소사실 기재례에 맞춰 쓰여있다니. 이런 충실한 현장 고증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것이겠지.


형사 재판정이 궁금하신 분들, 딱 이렇게 생겼습니다. [출처: 영화 '버닝' 캡처]


법정 영화, 드라마에서는 보통 권력 암투와 음모가 난무한다. 물론 현실에서는 영화, 드라마보다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영화 속 검사, 변호사의 삶은 실제 대다수의 검사, 변호사의 삶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 검사가 되기 위해서는 로스쿨 여름방학 때 검찰 실무수습이라는 인턴 과정을 거치는데, 내가 검찰 실무수습을 할 때 어떤 부장검사님이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 실제 검사는 어떨 것 같아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나쁜 놈도 없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멋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친한 검사 선배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처럼 슬기로운 검사생활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도 있는데 왜 슬기로운 검사생활은 없냐는 것이다. 같은 팀 변호사님들도 슬기로운 로펌생활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슬기로운 로펌생활을 할 수 있는지 배우고 싶다며. 그래도 최근에는 법조인을 바라보는 작품 속 시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일전에 드라마 제작 자문을 할 때도 작가님들이 검사로 일하면서 겪은 자극적인 사건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검사의 생활에 관심을 가져주셨던 걸 보니 말이다. 신원호 PD님과 이우정 작가님 버전의 검사생활과 로펌생활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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