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림 Jun 08. 2023

쓰는 사람

- 안녕하세요, 쓰는 사람입니다



어딘가에서 자신을 '쓰는 사람'이라 소개하는 이를  본 적이 있다. 소개를 듣자마자 나는 단박에 그 말이 좋아지고 말았다. '작가'라는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직업 명칭을 쓰지 않으면서, 오로지 그 사람이 하는 행위만으로 당사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할 수 있다니!! 작가라고 하면 뭔가 앞으로 꾸준히 책을 내야만 할 것 같고 남들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느껴지는데  '쓰는 사람'은 담백한 맛이 있다. 한낱 메모지에 끄적거리는 수준일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글을 꾸준하고 묵묵히 쓰는 것에 집중한 느낌이랄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도 거기에서 그닥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에 더더욱 마음에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책 한 권 낸 적 없고, 등단은 더더욱 하지 못했지만 매일매일 쓰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으니까.


그러다 지금의 내 직업을 생각해 보며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말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은 어쩐지 입에 착 붙지 않는다. 20년 넘게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도 왜? 심지어 나는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는데! 왜 나는 '가르치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좋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아이들을 가르쳤던 시간보다 무언가를 썼던 시간이 더 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생 시절 숙제라는 과업 때문에 억지로 썼던 일기부터 시작해 내가 생각한 세상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글자로 풀어냈던 대학교 시절의 습작들까지 나는 늘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가르치는 일은 이제 고작 20여년 됐는데, 쓰는 일은 무려 35년 간이나 했던 셈이다.


더불어 알게 모르게 나에게 큰 일이 생길 때마다 쓰는 것으로 내 감정의 찌꺼기들을 밖으로 내보내곤 했다. 그렇게 마구 종이에 쏟아내고 나면 마침표를 찍는 순간 밀려오는 후련함과 함께 종이에 적은 일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묘한 거리감이 느껴지곤 했다. 뒤죽박죽이던 생각도 신기하게 글자로 적어 내려가면 저절로 정리가 되곤 했다. 이 얼마나 건강한 해소 법인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고, 내 몸과 마음을 지키면서 건강하게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쓰는 일” 덕분이었다. 좋아도, 슬퍼도, 행복해도, 절망스러워도 나는 늘 그 일들을 기록하고 당시의 내 감정을 온전히 바라봄으로써 끝으로 가려고 하는 나를 붙잡아 중간 어디쯤에 데려다 놓고, 차분히 둥둥 뜰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그러니 난  앞으로 나에 대해 이렇게 소개해야겠다. 아니 이렇게 소개하기로 이미 마음을 먹었다.


"안녕하세요, 쓰는 사람 서림입니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읽고 쓰는 사람 서림입니다."


아, 좋다! ㅎㅎ




매거진의 이전글 충동적인 아이, 감정적인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