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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색손잡이 Oct 15. 2023

어른이 된다는 건

시간에게 졌다.

  오늘 잠시 볼일이 있어서 엄마랑 같이 읍사무소에 갔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매우 작은 시골동네이다. 외출을 하면 꼭 두세 명씩 아는 사람을 만날 정도로 매우 작은 동네에 살고 있다. 읍사무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어쨌든, 나와 엄마는 읍사무소에 들어서자마자 엄마의 지인을 만났다. 그분께서 오랜만에 나를 보시곤 말씀하셨다. 난 분명 인사밖에 하지 않았는데, 나보고 얌전해졌다고 하셨다. 어른이 되면 인사 한 마디로도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어떻게 나와 나눈 한 마디의 인사에서 그것을 알 수 있을까? 엄마는 웃으며 내가 나이를 조금 먹어서, 커서 그렇다고 말했다.  나는 그저 가볍게 웃음 지었다.

  내가 나이를 먹은 건 사실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는다고 무조건 커지는 것일까? 몸이 커지는 건 맞는데 마음도 커지는 걸까? 이렇게 크다 보면 어른이 되는 걸까?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어른이 되었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때가 되면 누군가가 말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나 스스로가 언젠가 깨닫게 되는 것일까? 아직도 엄마 말에 입 삐쭉거리며 맘대로 하는 걸 보니 나이만 먹었지 큰 것 같지는 않다. 아닌가? 오히려 조금 커서 대담하게 엄마말에 심술내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단순히 관점의 차이로 묻어두고 싶다. 애초에 이런 걸 복잡하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커서 어른처럼 보이고 싶은 걸 지도 모른다.

엄마가 먼지 많다고 안지 말라그랬다 ^^*

이렇게 왕밤만 한 곰인형을 좋아하는 걸 보면 분명 아직 애가 맞는 것 같은데 대담하게 엄마 말을 무시하는걸 조금 큰 것 같다. 큰 것 같은 게 아니라 컸다. 인정하고 싶지 않기는 하다. 근데 이제 물러날 곳이 없다. 중학교 다닐 때는 20살이 되려면 5년 언저리나 남아서 별 생각이 없었다. 근데 확실히 이제 3년에 못 미치게 남으니 조금 부담된다. 물론 20살이 된다고 짜잔 하며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아마 법적으로 20살부터 어른이 된다고 하니 그런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어른은 예민한데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 존재인 것 같다.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나이 먹었구나 느낀 게 아마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 아마 23년 2월 중순 즈음인데, 그날은 이상하게 산책이 하고 싶은 날이었다. 아마 곧 기숙사에 들어가게 될 테니 마지막으로 동네 한 바퀴 하고 싶었던 것 같다.(그리고 슬프게도, 지금까지도 다시 그 길을 걷지 못했다.) 어차피 집에 혼자 있고 신경 쓸 무언가도 없으니 다짜고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왔다. 확실히 날씨가 좋았다.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 뒤로 빙 돌았다. 내 산책길은 얘기하고 싶은 게 많다. 조금 걷다 보면 절도 보이고, 단조로이 낮은 집들로 이루어진 길이라 마음도 편안하다. 눈도 편하다. 산 중턱에 위치한 절의 풍등은 형형색색 눈이 참 즐겁다. 그렇게 나는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다. 근데 순간 나의 코로 텁텁하고 답답한 공기가 훅 치고 들어왔다. 아마 집에 있는 모든 창문이 닫혀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방과 베란다의 창문을 열었다. 공기가 상쾌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기분이 상쾌하게 좋았다. 그리고 소파에 풀썩 누워 멍 때리는데, 순간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공기가 텁텁하다는 느낌조차 받아본 적 없었다. 그런데 순간 공기가 텁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누군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창문을 열어 집안을 환기시켰다. 내 인생에 창문 열어서 환기해본건 16년 정도 살아오면서 엄마가 시켜서 한 것 밖에는 없었다. 나는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하다가 느꼈다.

아, 나 나이 먹었구나.


  비록 그때는 내가 처음 느낀 기분에 어색하고,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꾸준히 나이를 먹고 계속 이렇게 느낀다면 또한 익숙해질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공기의 텁텁함을 종종 느끼고, 그래서 앞으로도 종종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에 의문도 품지 않고 점차 익숙해질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예민하게 텁텁한 공기는 계속 느낄지언정, 내가 스스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을 만큼 익숙해진다는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러한 존재이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마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이 이해하지 못해서 그러지 않을까 싶다. 정확히는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에는 익숙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는 내 나이가 익숙하지 못한 것 같다. 2023년의 끝자락을 달리고 있지만, 나는 내가 17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이 엊그제만 같은데, 이제 1학년 종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눈 깜빡하는 사이에 시간이 지난다는 게 이런 말인가 싶다. 이제야 나이 많은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 수 있겠다. 지금도 이렇게 제 나이에 익숙하지 못한데, 나중에 30년이나 뒤에는 얼마나 더 익숙하지 못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아니면 오히려 정말로 익숙해져서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으려나? 별로 깊게 생각하지 말자. 그래도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나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늘어가는 내 나이는 항상 나에게 새로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새롭다는 그 감정에 익숙해지고 싶다. 이렇게 오늘도 나는 점점 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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