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다연 Jan 05. 2022

사랑으로 이어진 존재

신생아실의 빛바랜 추억을 소환하며

 아침에 조카에게서 첫 아이를 출산했다는 연락을 받고 나도 모르게 설렘과 흥분이 가득한 하루를 보냈다. 당장 찾아가서 축하와 아이의 면회를 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시국으로 모든 것이 불가했다. 하지만 조금 전 아이를 촬영한 동영상이 도착하면서 나의 입가에는 미소와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갓 태어나 사과같이 홍조를 띤 붉은 피부에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신생아의 영상을 돌려보자, 모든 긴장이 다 풀리며 무장해제가 되어버린다. 천사가 있다고 해도 아마 이보다 더 예쁘지는 않을 듯하다.


 나는 타고난 천성이 그런지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좋아서 지나가는 아이만 봐도 눈을 잘 떼지 못한다. 이미 훌쩍 커버린 딸아이는 나의 애정 표현을 이제는 부담스러워하고, 우리 집 댕댕이는 내 손길에 몸살이 날 지경이니 미안하기도 하다. 신생아부터 아장거리는 돌쟁이, 그리고 짓궂은 유아들까지 사랑스러워서 아동학과 유아교육까지 부전공을 했을 정도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일하게 될 줄 알았던 나는 현재 전혀 다른 분야인 토목 일을 일을 하고 있으니, 인생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간절함이 인연을 만드는지 20대 시절 대학병원 신생아실에서 일 년 남 짓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궁금함과 아픈 사연, 에피소드들도 많아서 몇 가지 적어본다.



 워낙 오래되어 빛바랜 추억으로 남아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시절에는 태어나는 아가들도 정말 많았던 것 같다. 삼 교대 근무를 했지만, 나는 주로 야간(나이트) 근무를 자처해서 했다. 야간 근무는 시간도 길고 생체리듬과도 안 맞아서 다들 꺼리는 근무였지만, 경제적 효과와 아가들을 안고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야간 근무는 두 명이서 하게 되는데 별다른 일이 없다면 인계를 마치고 난 후 아기들을 일일이 안아서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킨다. 적게는 스므명부터 많게는 사십 명까지, 나중에는 팔이 얼얼하고 후 달리지만 이것도 적응이 되면서 이내 근육이 생겨 힘자랑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사실 나는 이 시간에 제일 여유로우면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많은 아기들을 울리지 않고 밤 새 고요함을 유지시키는 나에게 함께하는 근무자는 종종 경이로움을 표하곤 했다. 

 아기들마다 바이탈을 체크하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분유를 먹이고 토닥이는 그 순간의 행복감은 지금도 힘들 때마다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아기를 자주 안아주면 손 타서 힘들다는 근거 없는 정보도 있지만, 아기의 울음은 불편함이 있거나 관심을 보이게 만드는 애착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아기가 관심과 사랑을 요하는 울음을 보낼 때 충분한 스킨십과 애정을 표현해 주는 것이 내가 아기들을 밤새 고요하게 만들었던 꿀팁이다.     




 대학병원에서 출산하는 산모들은 대부분 사연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픈 아기가 올 때에는 신생아실도 정말 초긴장 모드로 들어간다. 하루는 580g으로 태어난 초극소 미숙아가 출생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임신주수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25주 미만의 미숙아는 폐 조직이 미처 형성되지 않았기에 생존이 희박하다. 때문에 아기의 부모들은 대부분 치료를 포기하고 만다. 정말 작고 인형같이 생겼지만, 눈 코 입과 손톱 머리털까지 정상적인 아이와 똑같은 어엿한 생명체이다. 자가 호흡이 어려워 고통스러워하다 숨이 멈추는 과정까지 지켜봐야 하는 나의 마음은 정말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 

 짧은 근무 기간에도 불구하고 안 좋은 아기들이 너무나 많아서, 내 손으로 직접 고이 접은 아기들을 영안실로 내린 적이 있다. 그 영혼들의 자유를 소원하며, 앞으로는 의료 기술이 더 발달돼서 아기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희망을 가지게 되길 바란다.



  구순구개열(선천적으로 윗입술이나 입천장이 갈라진 것)로 흔히 언청이로 불리는 기형 질환을 타고 난 아기들도 종종 있다. 생후 3주 이상 지나서 상태에 따라 여러 차례 수술로 교정할 수 있는 치료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아기를 면회하러 오지 않았던 보호자에 너무나 화가 난 적이 있다. 심지어 그 산모는 자신이 낳은 아기임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지 않다고 입양시켜 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 여러 번의 설득에도 자식을 버리는 산모가 있었던 반면 안타까웠던 사연도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매독균에 양성 반응을 보이는 여자 아기였다. 산모는 본인도 모르게 남편으로부터 감염되어 오래전에 완치를 했으나, 임신 중에 균이 모체에서 태반을 통하여 감염된 것이다. 의료진들조차 분위기 서늘하고 두려워해서 그 아기는 홀로 격리되었는데, 다들 손이 닫는 것조차 꺼려했다. 

 병원 규정을 어기고 한밤중에 찾아와 오열하는 그 산모에 대한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저도 피해자예요. 아무런 잘못이 없는 아기까지 아프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 더럽게만 생각하지 마시고 제 아기도 한 번만 봐주세요” 울부짖는 산모를 토닥이고 진정시키며 난 아기를 안아서 보여주었다.



  아이는 사랑으로 이어진 존재이다.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사랑으로 키워낸다. 이 초심의 사랑이 훼손되지 않고 무럭무럭 성장하기를 바라면서, 보고만 있어도 선한 영향력으로 매료될 것 같은 귀엽고 작은 몸짓인 아이들에게 말한다. 사랑 가득한 엄마, 아빠를 만나 다채로운 따뜻함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조카의 첫 출산과 함께 오래전 신생아실의 추억을 떠올리며, 사색에 젖는다.

작가의 이전글 따뜻했던 그 고마운 만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