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무 방송작가 Oct 16. 2023

잘난 남자 만나는데 필요한 돈 1,850만 원

사랑에는 돈이 든다는데?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A는 강남 와인클럽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연봉 수억 원의 학원 강사를 소개받았고, 변호사를 만났다. B는 잘난 남자를 만나기 위해, 자기 동네가 아니라, 여의도에 있는 대형교회에 다녔다. C는 금융권 남자들이 스킨스쿠버를 많이 한다는 소리를 듣고, 스킨스쿠버 동호회에 가입했다. 잘 난 남자를 만나기 위해, 그녀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아는 언니를 만나러 갔다가, 언니 친구들과 밥을 먹게 됐다. 노처녀 소리 듣는 나이에도 일만 하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남자를 소개해주겠다며, 내게 이상형을 물었다.

교감이 중요하다며, 말이 잘 통하는 남자라고 대답했더니, 똑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가 말 안 통하는 남자를 일부러 골라서 결혼했을 거 같아?"

"말 잘 통해서 결혼하잖아. 결혼하는 그 순간부터 말이 안 통해."

"무슨 소리야 그게 아니지, 결혼 준비하는 순간부터 말이 안 통하잖아."

재밌다는 듯, 언니들은 까르르 웃었다. 말은 결혼하면 어차피 안 통하게 되니까, 조건에서 빼라고 했다.


 나도 덩달아 웃고 있는데, 언니들이 웃음을 멈추고, 사막의 미어캣처럼 셋이 똑같이 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얘 지금 이 상태면 연애 안 되겠지?"

"그러게, 애 직업도 괜찮고, 키도 이 정도면 괜찮은데, 아고, 이건 아니지."

언니들은 한숨까지 쉬면서, 능력 있는 남자 만나려면, 우선 나부터 바꿔야 한다면서 말했다.

"너 통장에, 1,850만 원 있지?"


 갑작스러운 통장 조사가 시작됐다. 

"너 자신한테 투자를 해야 돼, 안에 옷은 그렇더라도, 외투는 괜찮은 걸 입어야지. 내가 아는 모피전문점이 있는데, 거기 가면 밍크를 반값에 살 수 있어. 클래식한 긴 코트로 1,000만 원짜리, 너 나이 또래는 캐주얼한 점퍼 스타일이 있어야 돼. 500만 원."

"싼 밍크도 많던데, 너무 비싸네요."

"싼 거 싸 입을 거면, 안 입는 게 나아. 명품가방 안 들 거면, 에코백 드는 게 현명한 거와 같은 거야.." 


 남은 350만 원은 어디에 필요한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푸석푸석해가지고는, 아가씨 피부가 이게 뭐니? 피부과에서, 미백 탄력, 모공 관리까지 하는데, 250만 원 남자는 돈이 후광이잖아. 여자는 피부가 후광이야."

"샴푸만 쓰지? 머리 펌 하고 영양 좀 넣고, 염색까지는 안 해도 되겠다. 내가 아는데 가면 50만 원이면, 머릿결에 윤기가 좔좔 흐를 거야."

"50만 원은 어디에 쓸까 궁금하지, 화장품 사야지. 기껏 피부 바꿔놓고, 관리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이렇게 구체적일 수가!


 방송작가로 일하며, 0.1% VVIP만 상대하는 결혼매니저부터, 초혼, 재혼 가리지 않고, 남녀를 만나게 해주는 일명, 무료중매쟁이라는 사람까지 많은 사람과 인터뷰를 했다. 그들에게 듣지 못했던 얘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일상생활뿐만이 아니라, 결혼에도 해당된단다. 나한테 되로 투자하면, 남자에게 말로 받을 수 있다는 게 다를 뿐이라며, 자신들의 말을 새겨들으란다. 


 나도 잘난 남자를 만나고 싶다. 하지만 기준이 다르다. 언니들의 '잘난'은 'rich'겠지만, 나의 ' 잘난'은  'well'이다. 나는 모피코트와 광채 나는 피부 윤기 흐르는 머릿결은 없다. 청바지에 패딩점퍼를 입고, 밤새고 머리를 못 감아 모자를 쓰고 나간 나를, 사랑스럽게 봐주는 남자,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남자를 만났다. 거기에 말까지 통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밍크코트를 사지 않았고, 언니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덕분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 대추나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