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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로암 Oct 11. 2024

수업준비물

잘생긴 남자

 잘생긴 남자가 여자에 미쳐서 날뛰는 모습이 흐뭇하다. 여자를 찾아헤매고 알콜중독에 빠지고 경찰서에 들락거리는 모습이 귀엽다. 마침내 여자를 찾아냈는데 여자가 자신을 거부하자 어쩔 줄 모르는 그 눈이 사랑스럽다. 드라마를 끝까지 다 본 뒤 처음부터 다시 보고, 세 번째 처음을 시작하자 나는 살짝 돈 것 같다. 잘생긴 남자는 이렇게 사람을 돌게 만든다.     


 나는 좀 더 생기있고 활기차고 주변을 대하는 것이 유쾌해진다. 잘생긴 남자는 이렇게 세상을 즐겁게 만든다. 고객님이 물어본 걸 또 물어보고 이해못하고 생각을 못하고 또는 안하고.. 그걸 견딜 수 있는 힘이 커진다. 잘 견디다가 와 시발 이건 좀 못참겠다 큰 소리가 나오려고 할 때 그때 딱 잘생긴 남자의 얼굴을 보면 큰 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사르르 녹아내리고 나는 다시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고등부 수업 시작전에는 항상 잘생긴 남자의 사진을 상비해두었다. 문제 하나를 설명하면서 중간중간 세 번쯤 심호흡을 하며 잘생긴 남자를 보고 웃어야 했다. 잘생긴 남자가 없었다면 나는 고객님의 고막을 터트리고 잡혀갔을지도 모른다. 평화는 지켜졌다.    

  

 잘생긴 사람이라해도 다 그렇게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그 잘생긴 남자가 매우 섬세한 연기를 굉장히 잘해서 그의 감정이 내게 완벽하게 전달되는 것이 놀라웠기 때문에 그를 수업시간에 쓸 수 있었다. 수업의 준비물은 자신의 일을 잘하기까지 하는 잘생긴 남자이다.     

 

 잘생긴 남자가 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업준비를 해야할 오전시간에 드라마를 보느라 수업준비 하기 싫어진 것이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해야할 일의 순서를 정하고 그에 필요한 시간을 계산하여 드라마 볼 시간을 계획해서 남김없이 딱 맞게 화면 속의 그를 본다. 이렇게 준비를 빡빡하게 하면 탈이 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좀 불안하지만 그를 보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돌았네. 


 내가 돌아봤자 잘생긴 남자는 모른다. 그와 감정을 나눌 일은 전혀 없다. 만약에 그 잘생긴 남자가 나를 꼬시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상상을 해본다. 미친거다. 그건 일생일대의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장기를 털리고 돈을 다 뺏기고 빚을 지게 되는 위험한 일이다. 다행히 그는 화면 속에서만 나를 향해 웃어주므로 안심하고 그를 향해 웃는다. 휴 콩팥을 뺏길 일은 없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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