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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뫈 Aug 05. 2024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그깟 공놀이가 뭐길래

축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연고지 의식이 강한 스포츠다. 유럽의 클럽들을 보면 연고로 하는 도시의 환경과 역사는 물론, 다른 지역과의 지역감정까지 구단의 정체성에 녹아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유럽에 비해 비교적 연고지 의식이 약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사는 도시의 팀'이라는 개념까지 다른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프로축구연맹은 LG치타스가 2004년 안양에서 서울로 연고를 옮긴 걸 연고 복귀로 명명하고 있다. FC서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8년간 LG치타스를 응원했던 안양의 팬들에게 20년 전의 일은 연고 복귀가 아닌 연고 이전이다. 

<수카바티: 극락축구단>은 안양 서포터즈 'A.S.U RED'의 시점에서 서포터즈 그룹을 만들어 LG치타스를 응원하던 시절부터 LG치타스가 서울로 떠난 이후 시민구단인 FC안양이 창단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하루아침에 응원하던 팀을 잃었던 안양 팬들에게 새로운 팀이 생기기까지 9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안양 팬들은 2012년 FC안양 창단이 확정되기까지 마냥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싸우고, 호소하고, 몸부림친 끝에 다시 자신들의 고장인 '안양의 팀'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9년간의 투쟁은 고스란히 FC안양의 정체성에 담겼다. 안양 팬들은 수원 삼성과의 경기를 지지대 더비라고 부르고, FC서울에 멸칭을 붙이며 극도로 혐오한다. 외부에서 바라보면 강성 팬들이지만, 안양 선수들에게는 한없이 따듯하다. 작중 나오는 RED의 창립멤버 최지은 씨는 서포터즈가 선수들에게 '마지막 비빌 언덕'이라고 표현한다.

영화를 보면서 안양 서포터즈들을 만난 경험이 떠올랐다. 내가 안양종합운동장을 처음으로 갔던 건 2022년 가을이었다. 창단 10년 만에 K리그1 승격의 문턱을 밟은 안양은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수원 삼성을 만났다. 수원 전담인 나는 안양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1차전을 취재하기 위해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내려서 또 버스를 타고 나서야 경기장 앞에 도착했다.


저녁을 해결하려고 경기장 앞에 있는 국밥집을 찾았다. 국밥집 단체석에는 이미 얼큰하게 취한 안양 팬들이 한껏 들뜬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밥을 다 먹고 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서 안양 이야기를 실컷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 경기 결과는 0-0 무승부였다. 하지만 승격을 노리는 팀과 강등의 위기에 있는 팀이 결과를 똑같이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경기 전부터 엄청난 응원전을 펼쳤던 안양 팬들은 무승부에도 승격을 노래했다. 경기 후 만난 안양 선수들도 희망에 가득 찬 상태였다. 비록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에서 오현규에게 120분 극장 결승골을 실점해 승격에 실패했지만, 당시 1년차였던 나는 두 번의 경기에서 안양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구기종목 팬들이 왜 '그깟 공놀이'에 열광하는지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모두가 무언가를 사랑해본 경험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게 스포츠든, 사람이든, 취미 생활이든 말이다. 


<수카바티: 극락축구단>에서 FC안양 팬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단지 축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주제는 축구가 아닌 사랑이다. 어떠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축구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사랑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그깟 공놀이에 미치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속 2019년의 FC안양은 극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부산 아이파크에 발목이 잡혔고, 두 번째 승격 기회를 잡았던 2022년에도 결국 승격하지 못했다.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공교롭게도 <수카바티: 극락축구단>이 개봉한 K리그 여름 휴식기를 기준으로 FC안양은 K리그2 선두를 달리고 있다. 승점은 46점으로 2위 전남 드래곤즈(승점 42)와 4점 차다. 2022년 승격 실패 후 후유증에 시달리며 6위로 시즌을 마쳤던 지난해를 잊은 모습이다. FC안양이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K리그2 우승과 함께 다이렉트로 승격하는 것도 꿈은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FC안양의 승격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디 내년에는 붉은색보다 뜨거운 FC안양 팬들의 보라색 응원을 K리그1에서 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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