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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뫈 Oct 25. 2024

늦게 쓰는 요르단 출장기(1)

2+5일 요르단 출장기, 페트라부터 전세기까지

요르단과 월드컵 3차예선에서 같은 조에 편성된 이후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탈락의 악몽을 안겨준 요르단에 또 당할 거라는 반응, 그리고 월드컵 본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새 감독과 함께 요르단을 상대로 복수를 할 기회라는 반응이었다.


후자의 경우 홍명보 감독이 선임되면서 그 기대감이 줄은 게 사실이었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여론 속에서 9월 홈에서 팔레스타인과 비기고 오만 원정을 떠나 손흥민의 맹활약으로 간신히 승리하자 기대감보다 불신이 더 커졌다. 그렇게 홍명보호는 기대보다는 불신을 받으면서 요르단에 입성했다.

나는 한국에서 출발한 홍명보호의 본대가 요르단에 도착하기 이틀 전 요르단에 갔다. 대표팀보다 앞서 요르단 현지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갔냐고? 아니. 연차 쓰고 내 돈 쓰고 놀려고 일찍 갔다. 1편은 사실 요르단 여행기다.


요르단 출장을 가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회사에서 생각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는데, 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페트라'라는 고대 유적지에 매료되어 가기로 결정했다. 연차와 사비를 써야 했지만 살면서 언제 요르단을 가보겠냐는 마음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5일 새벽 1시 비행기를 타고 출발해 아부다비를 거쳐 현지시간으로 5일 낮에 도착했다. 지난 4월 카타르 출장에 이어 인생 번째 중동이라는 점에서 오는 익숙함, 그리고 (아마도) 다시는 오지 않을 같은 국가에서 느껴지는 낯선 감각이 뒤섞여 다가왔다.


놀러다니기 위한 관광비자와 이틀간 묵을 숙소 및 버스 등을 모두 예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다. 입국심사대와 공항 환전소 직원들의 중동식 영어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내가 중동에 왔다는 게 다시 한번 실감났다. 

요르단의 퀸 알리아 국제공항과 시내를 오가는 공항버스.

공항버스라고 우기는 미니 셔틀(학원 차량처럼 생겼다)을 타고 요르단의 수도 암만 시내로 이동해 우버를 잡아 숙소로 갔다. 짐을 풀고 24시간 만에 샤워를 한 뒤 침대에 쓰러졌지만 이내 일어나 준비해서 숙소 바로 밑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밥을 먹은 뒤 인근 유명 디저트집에서 요르단식 디저트를 포장해서 암만 시타델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타델은 암만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건물 사이로 중동의 강렬한 햇살을 받으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걸어 올라갔다. 숙소가 다운타운 쪽에 있어서 그런지 동아시아에서 온 젊은 남자를 바라보는 요르단 사람들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생각해보니 손에 크나페가 있었으니 우리가 보면 중동 사람이 약과를 들고 남산을 오르는 모습 같았을까 싶다.

웅장했던 시타델.
시타델에서 보는 암만 시내 풍경은 꽤나 멋졌다.

고대 신전의 잔해가 모인 곳 정도로 생각했던 시타델은 기대 이상이었다. 역사를 모르더라도 유적지 자체가 주는 웅장함이 있는 곳이었다. 천천히 시타델을 돌면서 풍경을 눈에 담았다. 중간에 중동 아주머니들이 아랍어를 할 줄 아냐고 물어봐서 "앗살라무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인사)", "슈크란(감사합니다)"이라고 하니 웃었다. 난 어쩌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아주머니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인지도(?).


시타델에서 내려오면서 로마 극장을 들렀다. 시타델 수준의 감흥은 없었지만 역시 멋진 유적지였다. 오히려 위에서 보는 뷰가 더 멋진 듯. 바로 앞이 다운타운 시장이어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1디나르(약 1900원)에 파는 팔찌와 반다나를 사서 숙소로 들어갔다.

페트라에 가기 전날 마시는 페트라 맥주. 의미 있는 전야제였다.
가끔 생각날 듯한 아락.

요르단에 오기 전부터 세운 첫날 목표가 있었다. 바로 요르단 맥주를 마시는 것. 요르단은 중동 국가지만 보수적인 편이 아닌지 주변국들과 달리 시내에 술을 파는 식당이나 술집이 있다. 카타르에서는 호텔 고층에 있는 라운지에 여권을 보여주고 들어갔지만, 요르단에서는 그냥 입장이 가능했다.


숙소에서 도보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식당을 찾아 페트라 맥주와 감자튀김을 시켰다. 사장님이 더 안 시키냐고 은근슬쩍 눈치를 줬다, 이후에 맥주를 더 시키니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세상 사람들 다 똑같다.


아락(Arak)이라는 게 있어서 뭔지 찾아봤더니 중동 전통 증류주였다. 페르시아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태초의 술이라는 타이틀을 보고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주문하니 소맥잔 정도 되는 크기의 잔에 담겨져 나왔다. 물과 섞으면 우윳빛이 된다던데 그렇게 서빙하는 것 같았다. 도수 높은 술에서 풀내음과 씁쓸함, 그리고 단맛이 느껴지면서 취기가 올라왔다. 한 잔 더 마시고 숙소로 돌아갔다.


이틀차는 시차 때문에 새벽 4시 반부터 눈이 떠졌다. 페트라에 가려면 5시 반에는 일어나 준비해 6시 반 전에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야 했지만 어쩌다보니 너무 여유롭게 준비해서 나왔다.


터미널 옆에 있는 마트에서 물과 작은 빵을 하나 사서 버스에 탔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20분을 쉰 걸 포함해 4시간을 달려 페트라가 있는 와디 무사(Wadi Musa)의 페트라 박물관 앞에 내렸다. 내리자마자 호객 행위를 하는 아저씨들이 몰려들었다. 택시기사들이었다.

페트라로 가는 길은 대부분 사막이다.
와디 무사에 입성하자 보이는 전경, 그리고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페트라.

한 택시기사는 품에서 지도를 꺼낸 뒤 유창한 영어로 내가 왜 택시를 타고 리틀 페트라로 올라가 페트라를 거꾸로 봐야 하는지 설명해줬다. 페트라에 당일치기로 왔고, 시간이 없고, 체력적으로 힘들다는 이유였다. 페트라 관련 정보를 검색했을 때 봤던 페트라를 역행하는 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후기가 생각난 나는 흔쾌히 20디나르(약 4만원)에 택시를 탔다.


페트라 호객행위의 시작이었다. 택시기사가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어디서 사는지 물어보자 자기가 아는 가게로 데려다줬다. 분위기에 휩쓸려 큰 돈을 주고 샀다. 택시에서 내린 뒤에는 하얀색 지프를 타라는 택시기사의 조언과 가이드를 쓰라는 매표소 직원의 말을 따르지 않고 리틀 페트라로 입장했다. 조금 지나니 나 혼자 스마트폰 신호도 안 터지고, 혼자 떠돌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입구로 나왔다.

여기서 죽으면 시체도 못 찾겠구나 싶었다.

들어가기 전에 무시했던 호객꾼들이 다시 내게 몰려들었다. 어떤 젊은 사람이 지프를 타지 말고 자기가 같은 가격에 자차로 그 위치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무엇에 혹했는지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 글을 보는 분들은 꼭 하얀색 지프를 타길 바란다. 차에서 내리니 이번에는 당나귀를 태워주는 아저씨가 여기서 목적지인 수도원(알 데이르)까지 걸어서 2시간30분이 걸린다며 당나귀를 타라고 했다. 모두 한통속이였다.


이미 사람을 믿지 않기로 결정한 나는 그냥 걸어가겠다고 했다. 당나귀 아저씨는 나와 40여분을 걸으면서 계속 당나귀를 타라고 권유했는데 결국 날 포기하고 말동무나 해주면서 걷다가 마지막에는 수도원으로 가는 방향을 알려줬다.

감탄만 나온 페트라.


감탄 또 감탄.

사실 초반에는 사막 한복판에서 길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당나귀 아저씨의 도움 덕에 길다운 길로 들어갔다. 여기서도 당나귀 호객꾼들을 잔뜩 만났다. 모두 수도원까지 2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하지만 당나귀 아저씨에게 진실을 들었던 상태였고, 외국인 관광객들(너무 반가웠다)도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뚜벅뚜벅 걸었다. 그렇게 리틀 페트라 앞에 내리고 2시간여가 지나서 수도원에 도착했다.


시타델이 웅장했다면, 페트라는 웅장함에 경이로움이 더해진 곳이었다. 수도원부터 입구까지 가면서 감탄을 하지 않았던 유적지가 없었다.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식당은 그 식당을 방문하기 위해 그 나라에 갈 가치가 있는 수준이라던데, 페트라가 그랬다.


암만으로 돌아가는 버스가 오후 5시에 출발하지만 페트라를 돌고 나오니 오후 3시였다. 박물관 인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폰을 충전했다. 아메리카노 가격은 무려 1만원이었다.

사실 수도원은 그 자체의 경이로움보다 고행길 끝에 도착했다는 점 때문에 눈물이 났다.
페트라를 대표하는 알 카즈네(보물창고).

사실 초반에는 온갖 호객행위를 당하고 사람에 대한 불신이 생겨서 화가 많이 났지만 돌아보니 즐거웠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정말 나를 위한 말을 많이 해줬고, 당나귀 호객꾼도 마지막까지 내 걱정을 해줬다. 페트라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했다. 그런데 지프차 대신 자기 차를 타라고 한 놈은 용서 못하겠다. 제발 하루에 한 번씩 문지방에 발가락을 세게 찧길 바란다.


버스는 다시 사막을 한참 달려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암만 시내에 도착했다. 우버를 불러 숙소에 왔다. 첫날처럼 숙소 밑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로 올라가 씻으니 잠이 쏟아졌다. 그렇게 내 이틀간의 요르단 여행은 끝났다. 내가 놀러온 건지, 일하러 건지 모를 수준으로 재밌게 시간을 보낸 이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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