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befree Jun 22. 2023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하루만이라도 온전히 나를 위해 휴가를 내고 싶은 날이 있다. 아니 많다. 주말에도 내 시간이 내 시간이 아닌지라 아이들도 학교에 가고 남편도 출근하는 그런 날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싶다. 미뤄뒀던 머리도 하고, 아이들과 복닥 거리느라 받지 못했던 피부과도 가야겠다 마음먹는다. 집에는 비밀로 하고 머리와 피부관리가 끝나고 나면 주말에도 마음껏 할 수 없는 영어 원서 읽기와 미드 쉐도잉을 마음껏 할 계획도 세운다. 가고 싶었던 유명 카페에 가서 평일 오전이나 오후를 즐기고 싶기도 하고, 하다못해 스타벅스에 가서 혼자 느긋이 책이라도 읽어야겠다고 계획을 세워둔다. 가족 여행을 위한 휴가나 아이들 학교 행사 등이 아니면 좀처럼 휴가를 내지 않기 때문에 혼자 몰래 하루 휴가를 쓰고 이것저것 할 생각에 들뜬다. 이것들도 하루에 다 할 수 있는 양은 아니며 취사선택 해야 하루 안에 무엇이라도 끝낼 수 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주말 당직 한 후 14일 이내 대체휴무를 쓸 수 있는데, 휴가야 그렇다 치더라도 대체휴무 정도는 나를 위해 쓰자고 마음먹었다. 내일이 14일이 되는 마지막 날이기도 해서 더 이상은 미룰 수 없기에 집에는 아니 정확히 남편에게는 비밀로 하고 대체휴무를 쓸 생각에 들떠 있었다.


얼마 만에 나를 위한 휴가인가, 저녁에 아이들 운동하는 곳에 데려다주고 2시간 정도 다른 엄마들과 수다를 떨며 기다리고 나면 끝나는 하루이지만, 아이들 학교 간 후 오전 햇살을 마음껏 누리며 조용한 집에 있을 생각에 행복했다.

점심은 가고 싶었던 식당에 가서 온전히 나만 생각하며 혼밥도 하고 싶고, 아니면 가까운 부산이라도 혼자 가거나, 여러 기회비용을 따져가며 무엇을 해야 잘 쉬었다고 스스로 칭찬할 수 있을까 하며 오늘 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드르릉 카톡이 울리고, 확인해 보니 남편도 내일 건강검진을 받는단다. 아, 내일 대체휴무 쓸 수 있는 마지막 날인데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데, 또 같이 쉬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기운이 조금 없어진다.

더 이상 비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대체휴무를 쓸 예정이라고 답하니, 왜 혼자 쉬려고 했냐고 섭섭해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거실에서 빅뱅이론을 보며 쉐도잉을 조금 하다가, 예약해 뒀던 피부과에 가서 관리를 받고, 점심은 열심히 맛집 검색을 해 끌리는 것을 먹고, 오후에는 스타벅스에 가서 원서를 읽을 계획이었는데, 남편이 건강검진으로 쉰다 하니, 바람이 빠진 것처럼 이런 계획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우선 남편은 나의 영어공부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냥 이 상태로 이 자리를 지켜주기를 바랄 뿐이다.

영어공부로 인해 아이들에게 소홀히 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아이들이 아직 손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졸졸졸 따라다닐 정도의 나이도 아닌데, 사사건건 레이다망을 아이들에게 두고 있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이제는 하고 싶은 것을 좀 할 수 있을 때가 되지 않았나?


참고로 엄마가 아무리 영어 원서를 읽고 쉐도잉을 해도 아이들은 영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육아 휴직 때 아이들 앞에서 책을 많이 읽었지만, 아이들은 책을 스스로 찾아 읽는 아이로 자라지 않았다.

나쁜 행동들은 아이들이 쉽게 영향을 받지만, 노력이 장기간 필요한 행동들은 아들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언젠가는 영향을 받지 않을까 기대도 좁쌀만큼 해보지만 결론은 아닐 것 같다. 남자 형제도 없었고, 남자아이들과 친하게 지낸 경험도 없기에 아들들은 원래 저런 것인지 장래에 정신을 차릴 것인지도 의문이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남편과 같이 쉬는 휴가의 문제점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피부과 예약 시간까지 남는 자투리 시간에 조용히 있을 수 없다. 요즘 빠져 있는 빅뱅이론을 자투리 시간에 보려고 했는데, 아마도 그런 시간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 건강검진 예약으로 일찍 남편이 나가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 늦은 아침에 건강검진이 잡혀 있다면 계속 말을 걸 것이고, 혼자 물건을 못 찾는 병이 있어 사사건건 물건의 행방에 대해 물어 댈 것이며, 쉐도잉이 시끄러우니 조용히 좀 해달라고 할 것이다.

온전한 내 시간이 아니다. 피부과 예약을 했다는 것도 고백해야 하고, 가계 사정과 피부 관리의 연관성에 대해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점심시간 전에는 건강검진이 끝날 것이니 둘이 의견을 조율해 식당에 가야 될 것이며, 스타벅스에서의 혼자만의 독서 시간은 남편이 신경 쓰여 못 갈 것이니, 우울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갈 무렵 육아휴직동안 좋았던 것은 평일 오전의 시간이었다. 그때는 주말이 힘들었고, 다른 엄마들처럼 주말과 방학이 그저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지금은 주말만 기다리지만, 주말이건 주중이건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뿐인데,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 살아본 결과 그 마저도 쉽지가 않다.


10대 때는 대학을 가면, 20대 때는 취업을 하게 되면, 30대 때는 애 키우느라 아무 생각이 없었고, 지금은 퇴직을 하면 온전히 삶을 즐기리라 다짐한다. 50대가 되면 너무 좋다고 하는데, 지금 좋을 수는 없을까? 항상 행복을 미뤄두고 살다 보니 행복은 항상 미루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하루 2시간 정도와 일 년에 두 번 정도의 혼자만의 시간이다. 이 정도를 바라는 것도 이기적으로 느껴진다. 내일 쓰려고 했던 혼자만의 휴가는 물 건너갔지만, 하반기를 기약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녁형 인간의 변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