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탄생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하지만 난 아직도 우리 인간이 이곳에 온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난 가끔씩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버튼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너무나도 삶의 짐이 고통스러워 세상을 등지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무리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왜 굳이 우리가 이곳에서 이렇게 삶의 연극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그 어떠한 존재가 나를 이곳에 보냈다면 난 그 존재에게 말하고 싶었다.
'미안하지만 난 당신의 게임 속의 캐릭터를 연기할 이유를 찾지 못했소'
다들 퇴사를 찬양한다.
유튜버들은 퇴사를 무슨 자유로운 해방처럼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나는 퇴사를 하고 이제 곧 찾아올 우울감을 초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우울감 이후의 우울증은 그것이 나쁘다는 판단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난 그래서 이번에도 찾아올 우울감을 피하지 않았다.
'그래 어치피 미션을 성공하지 못했으니 그에 대한 페널티는 달게 받아야지...'
하지만 어김없이 찾아온 그때의 우울감은 예상보다 깊게 찾아왔다.
나의 우울감은 외부환경에서 찾아온 어떠한 사건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무지 때문에 찾아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책이나 유튜브에서 자신이 '깨달은 자'라고 주장하는 마음공부 스승들의 말도 나의 질문에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나의 이 간단한 질문을...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요?"
물론 영상 또는 책 속의 언어들은 다양한 해답을 줄 것이다. 하지만 뻔했다.
어떠한 해답도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그것은 거짓이 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내가 존경하는 많은 영적 스승들은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서투른 스승들은 어려운 논리로 그 해답을 피하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 지금까지 내가 들은 참신한 해답은 '의미가 없다.'이다. 한때는 나도 그 해답에 솔깃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의미가 없다'도 또 하나의 '의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 흥분도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어쩌면 난 틀린 질문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마치 '우주는 무한한가 아니면 유한한가?'라는 질문처럼 말이다. 무한과 유한의 개념은 그저 인간이 4차원 속에서 만들어놓은 언어일 뿐이다.
퇴사 후는 마치 밀어놓은 숙제를 하듯이 이러한 생각에 휩싸여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내가 당시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아바타는 너무나도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의 우울감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긴 싫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