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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가케인 Feb 09. 2023

40세 부터는 버리면서 살아라.

    아무래도 내가 중년이 되어서부터는 주위에 중년의 지인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들은 그들의 인생이 우울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물론 그들의 우울감은 다양한 원인에서 올 수 있다. 자식 걱정, 부부간의 갈등, 직장에서의 문제, 경제적 상황 등등...


    하지만 나는 이 모든 다양한 우울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중년의 인생은 20대의 인생보다 많은 가졌을 것이다. 문제는 그 '가지고 있음'으로 인해 더 이상 채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20대에는 자신이 재벌 2세~3세가 아니고서야 물질적으로나 사회적 지위, 관계 적으로나 많은 부분 결핍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결핍 속에서도 딱 하나 중년이 가질 수 없는 '꿈'이 있다.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 될 수 도 있을 거라는 꿈. 즉,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뜻이다. 혹자는 그러한 꿈은 불확실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 않냐고 반문하겠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꿈은 곧 불확실을 의미하지만 그 불확실성이 우리를 나아가게 하기도 한다. 실체는 없지만 파랑새는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다. 말끔한 검은 정장을 입고 이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며 매우 중요한 Deal을 성공적으로 성취해 가는 나를 상상하곤 한다.


    반면 중년에는 20대 때 꿈꿨던 수준은 못되겠지만 어쨌든 그 시절에는 가지지 못한 직장, 가족, 자동차, 집이 있다. 물론 그 사이에서의 수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20대의 우리보다는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새롭게 갖기의 경쟁보다는 있는 것들의 전쟁이 시작된다. 더 좋은 집, 고급 승용차, 똑똑한 자녀, 더 좋은 직장 또는 사업, 사회적 지위 등 말이다. 하지만 중년의 우리는 20대의 우리보다 이러한 목표를 이 룰말한 힘이 없다. 그 이유는 이미 많은 것이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도화지에는 무엇이라도 그릴 수 있지만 이미 어느 정도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도화지에는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 때문에 내 인생에서의 변화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쌓아가는 인생만을 배워 왔다. 


You can do it!

포기하지 말라.

노력은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이러한 말들은 뒤처진 인생들을 루저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가지는 것을 멈출 수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무엇을 버려야 한다고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마 30대까지는 위의 말들을 믿고 열심히 쌓아가도 후회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40세부터는 다르다.  40대부터는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우선순위를 정하여 우리가 더 나아가야 하는 데 있어 방해가 되는 것들을 하나하나씩 비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물건이든, 관계이든, 하는 일이든, 꿈이든 말이다. 우리는 그동안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멋져 보이는 모든 것들을 우선 가방에 주서 넣어가며 살아왔다. 물건이든, 관계이든, 하는 일이든 말이다. 이렇게 무자비하게 쌓아온 짐들은 중년이 된 우리에게는 오히려 행복으로 가는 데 있어 매우 큰 장애물이 된다. 


    그러면 무엇부터 버려야 한단 말인가?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버릴지 우선순위를 정하라고 하면 대부분 이성적으로 계산을 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무엇이 나에게 유리할지 쓸모없을지 등등을 따지면서 말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거나 버리더라도 눈에 띄지 않을 만큼만 버리게 된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버리는 것에 있어 우선순위를 정할 때는 무조건 이성이 아닌 감성을 내세워야 한다. 이러한 버리는 일에는 '중년의 느낌' 이야말로 과학과 견줄만하다. 그 어떠한 것을 머릿속에 떠 올렸을 때 설렘이 없다면 우리는 과감히 버리는 리스트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 시기는 조금 나중에 정하여도 된다. 


    중년은 몸과 마음이 가볍고 단순해야 행복할 수 있다. 20대처럼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시도한다면 우리는 반듯이 그 허무함과 부질없음을 깨닭게 될 것이다. 행복으로 가는 방향을 완전히 틀리게 잡은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 또한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더 하기 위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버리다 보면 드디어 내면의 '나'와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주 뚜렷하게 보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 길에는 욕심과 집착이 없는 순수한 '나'와 만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쌓기 전의 10대, 아니 그보다도 더 어렸던 구슬치기하고 고무줄놀이를 하던 때의 '나' 말이다.


    그렇게 내면의 '나'를 만나게 되면 그 아이에게 말을 걸고 물어보아라. 그 아이는 신기하게도 중년이 되어버린 나에게 아주 명료한 길을 가르쳐 줄 것이다. 안갯속의 20대의 길이 아닌 너무나도 선명하고 의심할 수 없는 길 말이다. 그 길은 당신이 의심도 하지 못할 정도로 선명할 것이다. 


    당신도 하루빨리 그 길을 만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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