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일상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노가지
선생님, 그거 폭력이에요
초등학교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아니, 좋아했다기보다는 어려워하지 않았다. 직접 나서서 글을 쓰거나 문예가의 꿈을 꾸진 않았으니 말이다. 다만 당시엔 교내외로 창작대회가 수시로 열려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던 때였다. …… 하지만 대회가 많아질수록 학생들보다 더 교외대회 입상을 꿈꾸는 선생님의 압박은 강해져 갔다. 재능이 있어 보인다 하면 방과 후에 남거나 집에 가서 그림을 몇 가지 더 그려오라고 했다. 화가인 미술선생님의 지도 아래 자발적으로 학교에 남아 그림을 그려도 마냥 즐거웠던 불과 몇 개월 전 활동이 새 학년, 새 선생님과 만나면서부터는 더 이상 흥미롭지 못한 일이 되었다. ……
아빠는 동생과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상장 하나에 만원'이라는 우리만의 용돈제도를 이어나갔다. 초중고 내내 같은 학교를 다녀본 적 없는 우리 남매가 상장을 많이 타 올수록 아빠의 지갑은 얇아졌고 반대로 우리의 용돈주머니는 통통해지곤 했다.
(중략)
색칠기계에서 해방된 내가 연필로 눌러쓴 글 뭉치를 하나둘씩 내기 시작한 어느 날, 등교를 막 마친 나를 찾아 교무실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그녀는 무슨 일이냐고 찾아온 내 얼굴을 향해 원고지를 흔들기 시작했다. 곧 '너 이거 누가 써줬니? 솔직히 말하면 봐줄게'하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뒤따라왔다. ……
주춤하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심장은 떨렸지만 들키고 싶진 않았다. 속된 말로 쫄지 않으려 했다. 의미를 설명하는 내게 그녀는 처음보다 더 울그락한 얼굴로 소리치며 원고지를 뒤적였다. 그 소리가 마치 회초리를 맞는 것처럼 따갑게만 느껴졌다. ……
고등학교에 가서도 논술에 재능을 보이자 나는 국어선생님의 집중마크를 받는 학생이 되었다. 크게 관심이 없어도 괜찮은 대회가 있으면 글을 한 번 써봤으면 좋겠다며 권하셨고 때론 논리 키우기에 도움이 된다며 토론 동아리 활동에 부르시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잊고 있던 그날이 떠올라 시작부터 한숨이 튀어나오던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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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꼭 손으로 쓰지 않아도 글을 쓸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음을 보여주었고 모르고 살던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뜰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의지를 꺾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또 스스로 생각해 보고 의사를 결정할 수 있게 이끌어준 덕분이었다.
완벽한 하나의 원고가 된 줄 알았던 본 에피소드는
에세이 신간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노승희(미다스북스)>에 수록된 내용의 초고가 되었습니다.
책으로 탄생하기 위해 이 일기글은 적절한 옷을 갖춰 입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지지해 주는 일상 기록의 힘!
"일상을 특별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에도 부담을 덜어주거나 무언가를 바라는 그 마음에 제목을 달아보면 그만이다.”
전체 내용은 일상 에세이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