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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nt kim Jan 06. 2024

새벽이 사라졌다.

오롯한 나의 시간, 고요하고 불안했던 나의 새벽이 사라졌다.

나는 낮에 자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때는 난 정말로 고양이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야행성 동물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비루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기에 주행성 동물로 살아가야 하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예전 나의 수면 루틴을 보자면 새벽 4시에 취침, 아침 9시 기상을 반복하다가 고양이들이 내 옆자리에서 자겠다고 싸움이 난 것을 계기로 아침 6시 취침, 그리고 1시간 수면 후 기상을 반복했다. 그 결과 말 그대로 흑화 하여 잿빛톤의 피부를 가진 인간이 되었는데, 감사하게도 주위에서는 모두 간이 썩은 거 아니냐며 걱정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들을 뒤로한 채 나는 고양이들의 싸움을 말리겠다는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 하나로 1년을 버텼다. 이 루틴은 독립 후에 이사를 하고 난 뒤,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고양이들이 싸우지 않았음에도 이어졌다. 이 패턴을 유지한 이유는 간단했다. 사실 난 오롯한 새벽의 서늘함을 나 홀로 즐기는 중이었다. 야행성 동물인 고양이마저 잠든 시간에 나 홀로 깨어있는 것이다.


이른 겨울에 나 홀로 맞는
새벽의 서늘함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 새벽에 창문을 열어두었을 때의 서늘함을 유난히도 사랑한다. 이 서늘함이 마치 이 세상에서 내가 사라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어 준다.

내가 한참 많은 꿈을 꿀 수 있었던 유일한 시절에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나라 몰타에 잠시 머물렀던 때가 있다. 지중해 기후를 완연하게 느낄 수 있는 한여름에는 밤이 되어야 비로소 몸을 피할 수 있는 어둠이 생기고 그제야 활동성이 부여된다. 그래서 한 밤중이나 새벽을 향해가는 시간에 산책을 하곤 했는데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기온과 새벽의 달이 고요하게 내는 푸르른 빛은 팍팍한 지금의 현실에서 떠나는 짧은 현실도피에 딱 적합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한다. 특히 나는 누워서 잠들기까지 3시간 이상이 걸리는 수면장애와 비슷한 습관이 있기 때문에 잠드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새벽과 이별해야 한다는 말이다.

새벽의 나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불안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모두가 어두워진 탓에 세상이 준 유일한 공평함을 느끼고 편안해했다. 그리고 공기가 탁하지 않은 지역 덕분에 달빛과 별빛을 즐기며 내가 좋아하는 영상이나 나의 아이돌에 빠질 수도 있고 고요함  속에서 영화 한 편에 깊게 몰입할 수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새벽이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진 궁극적인 이유가 있었다. 간신히 버틴 하루를 그대로 끝내기 아쉬웠고 다시 새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는 것.




새벽이 사라진 요즘은 어쨌든 몸의 건강은 찾았다. 비록 살이 찌긴 했지만! 덕분에 나도 살이 찌는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이어트라는 것을 하기로 했다. 식단조절이 필요한 시점이라니! 나의 유일한 취미였던 나의 새벽이 사라진 마당에 다이어트도 해야 해서 슬픔이 두 배가 되었다.



그래도 새벽을 포기할 순 없어서 차라리 일찍 잠들고 조금이라도 빠른 아침, 즉 늦은 새벽을 즐기기로 하고 매일 새벽을 기다리며 잠이 든다. 새벽을 끝내기 싫어서 잠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새벽을 맞이하기 위해서 잠에 드는 것이다. 예전과 비교해서는 나를 가동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어서 할 수 있는 일도 그만큼 줄어들었기에 때때로 마음이 급해지고 오히려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다만 조금 달라진 점은 내가 무기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불안해하기보다는 이 또한 ‘언젠간 지나가겠지. 내가 쉬어야 하는 시간이 왔나 보다’하고 쉬어가고 있다. 이런 나의 선택으로 인해 나의 앞날이 변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움직일 힘이 없는걸? 그냥 살이나 빼기로 했다. 5kg을 빼고 나면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들이켜는 가까운 미래만 그려야겠다. 이렇게 짧은 짧은 미래를 기약하다 보면 언젠가는 조금씩 움직일 힘이 생길 것이다.


고요하고 공허했던
나의 새벽이 사라진 요즘

그래도 나는 꽤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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