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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꼭 배워야 쓰나? 그냥 쓰면 되지~

닥쓰 정신으로 무장하자!

by 타샤 용석경


* 프롤로그에도 밝혔듯이 연재의 목적이 내 이름 석자 박힌 책을 꿈꾸지만 아직 펜을 들지 못한, 혹은 출간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는 게 망설여지는 이들에게 경험을 나누는 것이다 보니 제목의 오류는 너그럽게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연히 배우면 더 잘 쓸 수 있지만, 글쓰기에 대한 마음의 장벽을 없애고자 하는 완곡한 표현이니까요. 실은 스스로를 향한 응원의 말이기도 해요!



"아직은 글을 쓸 준비가 안된 것 같아요. 책을 좀 더 많이 읽은 뒤에 시작해 보려고요."


언젠가 출간이 꿈이고 독서 클럽 모임장까지 하며 역동적인 에너지를 내뿜는 지인에게 글쓰기를 권했는데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지금까지 엄청 읽었잖아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간신히 참았다.


꾸준한 인풋은 풍성하고 깊은 아웃풋을 위해 필요하다. 누군가는 수많은 책을 읽고 어느 순간 갑자기 '글쓰기의 신'에 빙의된 듯 유려한 글을 뚝딱 써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통 사람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마도 완벽하게 시작하고 싶은 욕심, 부족하고 하찮은 글을 누군가에게 내어놓는다는 부끄러움에서 비롯된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의 글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드물게 관심을 갖는 이들도 대부분 너그럽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준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SNS가 아닌 블로그나 브런치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 믿음이 있기에 내향인인 나도 용기 내어 글을 쓴다!) 그래도 두렵다면 일단 쓰고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꼭 누가 봐야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니까.


글이 책으로 태어나는 건 마법이 아니기에 여러 가지 우연과 행운과 조건 등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기획출간뿐만 아니라 내 돈 내 책 자비 출간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뭐? 바로 일정 분량의 글, 원고다. 책 한 권으로 출간될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을 충족한 글. 적게는 A4 60장, 많게는 100장이 넘는 글을 써내는 능력을 단번에 바라는 건 욕심이다. 큰 강도 작은 물줄기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한 줄, 한 단락, 한 장부터 시작되고, 그렇게 쓸 수 있는 힘이 쌓여야 한다.


나도 안다. 마음은 파인다이닝의 지존 안성재 셰프나 중식 요리의 대가 이연복 셰프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양파 한 번 까 본 적이 없는데 어찌 감히. 눈물 콧물을 닦으며 양파를 까고 씻고 써는 쓰린 시간이 필요하다. 무림의 고수도 3년간 장작만 팬다고 하지 않던가. 결론은 일단 써야 한다. 그러다 보면 톱클래스요리사는 아니어도 척척척 둘둘둘~ 마법처럼 단숨에 김밥을 말아내는 김밥천국 이모님의 수준에는 이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단순해 보이는 밀가루 반죽도 매일 해봐야 요령이 생긴다. 물은 얼마나 붓는지, 효율적인 자세는 무엇인지, 어떤 재료를 첨가하면 좋은지 등. 그런 노하우로 만들어낸 반죽은 수제비나 칼국수가 되기도 하고, 만두피로 활용되기도 하고, 도넛이나 꽈배기도 될 수 있다. 밀가루만 백날 째려보면서 언젠가 최고의 요리를 만들겠다고 떠들어봐야 답이 나올 리 없다. 일단 써 봐야 감이 잡히고, 그래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옛날처럼 원고지에 손으로 한 땀 한 땀 쓰고 틀리면 지우는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요즘은 키보드만 투닥거리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심지어 컴퓨터가 없다면 폰으로도 쓸 수 있다. 그 증거로 나의 멘토 류귀복 작가는 휴대폰으로만 벌써 두 권의 책을 썼다. 초고도, 퇴고도 스마트폰으로 한다. 그의 글을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온다. 이걸 폰으로 썼다고. 대박~ 도구를 탓하기는 무색하리라.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결국 출간으로 이어진 나의 글쓰기를 고백하자면 이렇다. 일단 쓰라고 목청 높이지만 나도 시작이 참 어려웠다. 참고로 지난번에도 밝혔지만 나는 글쓰기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다.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은 대체로 소싯적에 한가닥 했거나, 국문학 등 관련 전공을 할 만큼 글이나 문학에 애정이 있거나, 이미 잠재력을 무한 장착한 다독가인 경우가 많다. 그에 반해 초등시절 교내 장려상 외에 기억나는 수상 이력이 없고, 편지 한 통에 볼이 발그레지는 풋풋한 십 대 시절에도 손으로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매우 꺼렸다(참고로 악필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다독가라고 내세우기는 민망한 수준이다.


그러던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이렇다. 갑자기 찾아온 암 진단의 충격으로 어질어질 정신을 못 차리다가 문득 기록을 하고 싶었다. 어디에 어떻게 할지도 몰라서 헤매다가 블로그에 어리바리 첫 글을 썼다. 처음엔 어색하더니만 살살 재미가 붙고 점점 쓰고 싶은 게 많아졌다. 그렇게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막 썼다. (당시만 해도 출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에세이를 가장해서 징징거리기도 하고, 르포 기자라도 된냥 의료체계의 허와 실을 논하기도 하고, 항암준비물 백서를 만들겠다고 열정을 불사르기도 했다. 그렇게 쓰다 보니 200편이 넘는 글이 쌓였고, 그게 첫 출간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글을 쓸 때마다 살짝 부끄럽고 소심해진다. 이렇게 써도 되나? 이런 표현은 너무 없어 보이지 않을까? 저 작가님의 글은 어쩜 저렇게 우아하면서도 매력적일까 등.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관련 강의를 듣지도, 습작 작법 작문 등에 대한 책을 탐독하며 심도 있는 배움의 탑을 쌓지도 못했다. 물론 좀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에 좋은 책을 읽고 나름의 노력을 하지만 여전히 한참 부족하다.


그럼에도 일단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웹브라우저를 열고, 브런치를 찾아들어와서 글쓰기를 누른다. 물론 브런치에는 하도 좋은 글이 많다 보니 바로 글쓰기로 오지 못하고 글을 읽으며 감동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감격에 겨워 댓글을 힘차게 달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루틴이다. 그래도 일단 한 줄이든 두 줄이든 쓰는 것에 의의를 둔다.


출간은 재능보다는 노력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사례가 있으니 바로 나의 남편. 그는 글을 잘 쓴다. 내 눈에 콩깍지라기보다는 전업주부로만 사시던 시어머니가 일흔이 다 된 나이에 수필가로 등단하신 걸 보면 그에게 재능이라는 DNA가 전해진 게 틀림없다. 부부의 연을 맺게 된 지분의 팔 할은 아름답고 촉촉한 연애편지였던 걸 보면. 그는 언젠가 꼭 글을 쓸 거라 했다. 그 언젠가는 그 뒤로도 계속되었고 지금은 희미하게 빛이 바랬다. 내 첫 책이 나왔을 때 흔들리던 그의 눈빛. 마치 '어떻게 내가 아닌 네가 책을 쓸 수 있지?'라는 듯했다. 무려 18년간 언젠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었다면 어땠을까. 혹시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을지도? 아무리 봐도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있기에, 다시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봐야겠다. 제발 좀 쓰자고!




블로그 글을 넘어 출간을 하고 싶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와닿았던 책 《내 인생의 첫 책 쓰기》를 소개한다. 글쓰기 관련 좋은 책이 많지만, 알에서 깬 병아리가 처음 본 대상을 엄마로 인식하듯 나에게는 이 책이 그랬다. 지금도 살짝 게을러지거나 은근슬쩍 엉덩이를 뒤로 빼고 싶어지는 순간이면 책을 다시 집어 들고는 한다.


'글쓰기부터 책 출간까지의 모든 과정'이라는 부제답게 초보 글 쓰는 이들을 위한 채찍과 당근, 그리고 꿀팁이 골고루 담겨있다. 양계장에서 일을 하면서 꾸준히 읽고 쓰고 책을 출간하는 작가님. 2017년도에 이 책을 출간하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집필을 하고 있다. 이 책이 좋은 이유는 읽다 보면 도대체 '내가 쓰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느새 뭐라도 쓰고 싶어서 근질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출간을 염두에 둔 글쓰기가 담겨 있기에 내 책을 쓰고 싶은 누구에게나 유용할 것이다.


사족으로 이 책을 출판한 더블엔은 짝사랑 같은 내적 친밀감이 가득하다. (이후에 본격적인 출간 준비 관련해서 추천할 책이 또 더블엔에서 출간되었다.) 멘토 류귀복 작가님을 비롯하여 더블엔에서 나온 책들을 보며 나는 저 반열에 오를 수 없겠구나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지만 꼭 내 책을 낼 수 있어야만 좋은 건 아니니까. 그래도 언젠가 나도 저기에 끼고 싶은 욕심은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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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붓을 들어본 적 없이 농사일만 해온 모지스 할머니도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미국 국민화가가 되어 101세까지 활동하셨다. (책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평생 글을 모르고 사시다가 한글을 배운 지 6년, 74세에 시집을 낸 조남예 할머니도 계시다. (시집 《자꾸자꾸 사람이 예뻐져》) 글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어서 쓸 수 없다는 말이 무색해진다.


정작 내 코가 석자인데(일단 쓰자고 이렇게 떽떽거리면서 정작 나도 꾸준히 쓰는 루틴을 잘 이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연재를 시작했다!!!) 너무 열을 낸 것 같아 훈훈하게 마무리를 해본다. 내가 치료를 받던 때, 딸이 선물해 준 손톱 두 마디 만한 미니 그림책.


단 한 줄이라도 내 마음을, 말하고 싶은 걸 나만의 방식으로 적는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맞춤법조차 서툰 아이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이제 '뭐라도 쓰고 싶다'는 작은 의욕이 꿈틀거리기를 바란다.


<엄마가 밉다>

지은이 이삐

밉다고 해서 미안해

난 정말로 엄마가 미운데 엄마는 나에게 잘해줘

엄마 떼쓰고 화내서 미안해

잘 못해줘서 미안해

근데 엄마는 왜 나한테 잘해줘?

난 때쓰고, 화내는데 엄만 왜 나한테 잘해줘?

잘해주는 건 좋은데 엄마에게 난 아무것도 잘해준 적 없을 텐데

난 엄마가 나에게만 너무 잘해줘서... 엄마가... 미워...

엄마가 밉다

엄마, 엄만 절대... 하늘나라 가면 안돼... 알겠지?

절대로... 엄마는 내가 지킬거야!

엄마... 사랑해♡

난 엄마를 사랑하는 걸..?

(맞춤법에 맞추지 않고 아이가 쓴 원글 그대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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