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이야기
* 단어 '버스'에 대한 이야기
새벽 2시까지 책상 앞에 앉았다 나서는 아침은, 열아홉의 나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꾸벅꾸벅 졸음과 싸우다 초록불을 놓친 적도 몇 번. 두 번의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면 그곳엔 이미 같은 학교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서너 명 서있곤 했다.
내가 다녔던 예술고등학교에는 무용과, 음악과, 연기과, 미술과, 그리고 문예창작과가 있었다. 그 버스정류장에 있던 친구들의 전공은 각기 달랐는데, 머리를 위로 깔끔하게 올려 묶은 무용과 학생과, 등 뒤로 커다란 악기를 매고 있었던 음악과 학생, 그리고 아마 미술과 학생이었던 것 같은 친구까지. 종종 버스에서 이렇게 다른 과 친구들을 마주치곤 했던 그 시절 그 버스는 70번이었다. 초록색의 작고도 정겨운 버스.
70번 버스를 타고 학교까지 가는 길은 대략 40분 정도가 걸렸다. 고양시 시내를 빙빙 둘러 가는 버스였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므로 나는 종종 그 버스 안에서 모자란 잠을 채우곤 했다. 어제 미처 다 쓰지 못한 소설 원고를 들고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선생님께 혼날 걸 알면서도 고치지 못한 부분과, 밤새 고민하던 미완성의 결말이 신경 쓰이면서도, 그때의 나는 버스 안에서 원고에 머리를 박고 졸곤 했다. 아무리 큰 걱정도 잠을 이기진 못했던 것이다. 대학에 대한 온갖 고민과 당장 오늘 있을 실기 수업에 대한 고민이 뒤섞인 채로 열아홉의 나는 매일 아침 70번 버스의 뒷자리를 채우곤 했다.
학교 앞에 도착해 내릴 때쯤이면, 승객들로 가득 찼던 버스는 이미 한가해진 뒤였다. 학교가 종점과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버스는 그렇게 매일 아침, 우리를 학교로 실어 날랐다. 매일 같은 자리를 빙빙, 또다시 빙빙. 각자의 전공에 맞춰 우리가 매일 똑같은 삶을 살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교로 향하는 시내버스 못지 않게, 그 시절 많이 이용하던 것이 시외버스였다. 타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탓에, 평일에는 첫째 이모집에 얹혀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주 주말만큼은 아닐지라도, 한 달에 두세 번씩은 본가에 내려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고양 종합 터미널을 이용하곤 했다.
일산에서 본가까지는 약 2시간 정도가 걸렸다. 터미널 밑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서 간단히 배를 채우고, 버스에 오르는 순간은 나에게 설렘 그 자체였다. 그 시간이 마치 '집'으로 떠나는 짧은 여행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토요일과 일요일, 딱 이틀 간의 여행. 집은 언제나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안정적인 공간이었고, 그건 집을 떠나 살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2시간 운행 시간 동안 나는 정해진 플레이리스트를 들었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가수의 노래들. 플레이리스트를 반복 재생으로 틀고 나면,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들곤 했다. 이틀 동안 아무런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그 해방감. 그것은 70번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할 때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70번 버스에서의 고민과 걱정들이, 집으로 향하는 그 버스 안에서는 모조리 사라지는 느낌. 정확히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느껴지곤 했던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본가에 살고 있는 나는, 이제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출발지와 도착지가 뒤바뀌어 버린 지금. 이 상황에서 버스는 나에게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설렘과 기대-가 바로 그것이다.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 간다는 느낌. 그리고 그곳에서 만날 사람들과 새로운 장소들에 대한 설렘. 버스는 이제 나에게 그런 의미인 것이다. 앞으로의 나는, 버스에 대해 또 어떤 기억을 가지게 될까?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의 기대감을 간직한 기억일 수도, 누군가의 좋지 않은 소식을 듣고 달려갈 슬픔의 기억일 수도, 기쁜 일을 축하하러 달려갈 행복함의 기억일 수도 있겠다마는... 한 가지 바라는 점은 이 모든 기억이, 돌고도는 버스의 방향처럼 언젠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삶의 궤도에 따라 기억도 변한다. 다만, 모두 사라지지는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