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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이 Feb 11. 2022

잃어버린 나를 위하여

김혜진 <9번의 일>

한국인은 연평균 1993시간을 일한다. 살아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더 오래 일하기를 원한다. 일하지 않는 자는 도태된다. 사회는 그들을 패배자로 분류하고 정의한다. 일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자본을 얻는다. 하지만 단순히 자본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본이 아닌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일한다. 그 이유는 조금씩 다르다. 사회적 명예나 자아성취, 혹은 인간으로서의 존엄 등이 그 이유가 될 수 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퇴직 후 극심한 우울을 느낀다. 더 이상 자신의 존립 이유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명함이 더 이상 쓸모없음을 느낄 때, 그 상실감은 배가 된다. 우리는 일을 할 때서야 우리가 더욱 우리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얼마 되지 않는 월급통장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릴 때, 우리는 삶의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전부 틀렸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았고, 삶의 균형은 무너져 내렸다. 직장인으로서의 ‘나’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나’는 철저히 구분되어야 하지만, 한 쪽이 규칙을 어기고 경계선을 넘어버렸다. 더 이상 가족을 위한 삶은 없고, 일을 위한 삶만 있다. 일만을 위해서 살 때 우리는 우리다워지지 못한다. 그곳에는 사랑과 관용 없이, 생존과 투쟁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생존의 끝에 다다르면, 그것이 곧 가족을 위한 삶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생존의 끝에 다다른 우리에게는 그동안 쌓아올린 거대한 철탑만이 남을 뿐이다. 가족과 사랑, 인간다운 삶은 어디에도 없고 비현실적으로 거대해진 철탑만이 나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여기 그 철탑 아래 서있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50대 가장이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실적을 채우지 못해 퇴직의 기로에 서있는 가장. 회사는 끊임없이 그에게 퇴직을 종용하지만 그는 지방으로 좌천되면서까지 자리를 지키려 든다. 그것은 그에게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얄팍한 월급 통장과 퇴직금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지켜야할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에서 수없이 많은 세월을 보냈다. 책임감과 소속감, 동질감 같은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며, 그에게 회사는 삶의 전부가 되었다. 그는 어렴풋이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회사를 떠나면 나를 잃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버티고 버티던 그가 끝내 다다른 곳은 철탑 건설 현장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익명의 번호를 부여 받는다. 9번. 그는 언제 사라져도 상관없을 수많은 번호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 생존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이든 해야 했다. 다른 이의 목숨을 위협하면서까지, 철탑을 건설해야 했다. 그것이 회사가 원하는 일이었고, 회사가 그에게 바라는 성과였다. 번호는 언제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킴으로써, 자신의 삶도 지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상황은 정확히 반대로 돌아갔다. 그는 끝없이 타자화 되고 있었다.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삶으로부터. 철탑을 세우는 ‘그’는 아내가 알고 있던 남편도, 아들이 알고 있던 아버지도, 장인이 알고 있던 사위도 아니었다. 병으로 야윈 장인어른을 모시고 친절히 병원으로 향하던 사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가족을 위하던 가장은 온데간데없고, 무자비한 철거반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일에 심취한 나머지, 일에 함몰되었다. 가족을 위해 시작했던 일은, 그를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배제시켜 버렸다. 극한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까지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이 시대의 어머니, 아버지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지독한 투쟁 끝에 철탑을 완성시킨 9번은 그 철탑을 다시 무너뜨린다. 어쩌면 이런 식으로 아주 오랫동안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세워 올린 것들의 나사를 풀어버린다. 그는 끝없이 철탑을 세우고, 다시 무너뜨리면서 직장에 남아있고자 할 것이다. 나는『9번의 일』의 표지를 덮으면서, 이 책은 어쩌면 이 시대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편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이 책이 서글프고 사실적인 이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제2회 소설독서대전 수상작을 일부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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