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이야기
* 단어 '지하철'에 대한 이야기
파란 녹이 낀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아침의 지하철, 옹기종기 사람으로 꽉 찬 아침의 지하철을 타고 가며 생각한다. 지하철이 한 정거장, 한 정거장을 지날 때마다 까만 유리에 나의 얼굴이 비친다. 마치 시간이 나를 알 수 없는 곳에 데려다 놓는 것처럼, 지하철은 그렇게 빠르게 나를 싣고 간다. 매일 아침마다, 매일 저녁마다, 그리고 매일매일마다.
지하철이 한 정거장, 한 정거장에 멈춰 설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몸을 움직인다. 내리고, 타고, 내리고, 타고. 끝없이 반복되는 움직임 속에서 지하철은 그렇게 나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열정, 미래와 걱정을 담은 채로 지하철은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
매 순간 얼마나 큰 간절함이 그곳에 담겨 실려가고 있을까.
누군가는 가장의 무게를, 누군가는 꿈의 무게를, 누군가는 그저 끼니의 무게를 이겨내기 위해 하루하루 지하철에 몸을 맡긴다. 밀려오는 졸음을 참으며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과, 의미 없는 휴대폰 속 SNS에 시선을 맡기는 사람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사람들과, 종이책을 들고 읽어나가는 사람들. 그렇게 모두 각자의 시간 속에서 삶의 무대로 나아가고 있다. 지하철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우리를 실어 나르고 있다지만.
다시,
이제는 저녁 지하철을 타며 생각한다. 이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있는 사람들의 하루에 대해 생각한다. 각자의 직장에서, 학교에서 시간들을 보내고 다시금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 그들을 기다리는 안식처는 얼마나 따뜻하고 아늑할까. 혹은 얼마나 더 차가울까. 지하철은 다시 빙빙 돌면서 우리를 각자의 집에 내려준다. 집은 언제나 그곳에 있고, 지하철은 언제나 그곳을 지나가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안심이 된다. 내가 아무리 지쳐도, 지하철이 다시 내게로 돌아올 것임을 알기 때문에.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나는 내일도 다시 지하철을 타러 간다. 일을 하러 간다. 공부를 하러 간다. 그리고 다시, 집에 돌아온다. 지하철을 탄다는 건 어디선가 내린다는 얘기고, 그건 나의 몫이 아직 다하지 않았다는 얘기인 줄로 안다. 계속 빙빙 도는 지하철을 타면서도 마음 한쪽 구석 어딘가에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드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의 복잡한 성격처럼, 지하철도 계속해서 빙빙 돌 것이다.
빙빙.
빙빙.
또다시, 빙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