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유 Nov 30. 2022

나는 대안학교 교사다.

간디 '뽕' 맞는 날

나에게 오늘은 일 년 중 가장 가슴 설레는 날이다.

학교생활이 가장 힘들고 지칠 즈음인 11월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간디 뽕’을 맞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주 절묘한 타이밍이다.

우리 학교 3학년 아이들의 가장 큰 특권이자 의무는 ‘졸업작품’이다. 일명 ‘논문’이라고도 불린다. 거꾸로 뒤집어 ‘곰국’이라고도 불리며 1년간 우려내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이다.

나는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논문’이라는 것을 접하고 어설픈 학자 흉내를 내며 내 글인지, 남의 글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작품을 만들었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에게 논문이라니... 참 어려운 길을 가는 우리 학교 아이들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진학하게 되는 국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중학교가 아니라 굳이 집에서도 멀고, 학비도 비싼 학교를 스스로 선택해서 온 아이들이다. 그러니 '간디학교 자기주도학습의 꽃' 이라고 하는 그 험난한 '논문' 의 길을 마다한다는 건 또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라 싫어도, 힘들어도 무조건 할 수밖에 없다.

그 1년간의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날이니 나도 덩달아 긴장되기도 하고 또 설레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긴 시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저 아이들과 함께 어린아이가 되었다가,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가 또 먼 미래를 만나는 행복한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꾸었을 뿐인데... 그것이 왜 이렇게 힘이 드냐고, 그냥 포기하겠다고, 그냥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나답게’ 살겠다고 작은 소리로 선언하는 아이.

그 아이에게 나도 용기 내어 손을 들어 질문을 했다. 그럼 ‘나답게’사는 것이 어떤 것이냐고.

잠시 뜸을 들이던 아이는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고는... 한참을 울먹인다.


우리 모두는 고요히 기다렸다.

하지만 무대 위에 앉아있는 저 아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 수많은 눈동자가 얼마나 부담스럽고 신경이 쓰였을까?

1년간 한 가지 주제로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고 표현한다는 것은 어른이 된 나에게조차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나는 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16살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꼭 해야 하나?’ ‘왜 해야 하지?’ ‘반드시 이런 식으로 할 필요가 있을까?’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몇 번의 좌절의 순간을 맞이했을까? 몇 번을 포기하고 싶었을까?

아니 얼마나 잘 하고 싶었을까? 논문 한다며 살짝 뽕 들어간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하던 후배들에게 과연 감탄의 눈빛을 받아 낼 수 있을 것인가? 멀리서 달려와 주신 부모님들의 감동의 웃음과 눈물, 그동안 함께 애써주신 선생님들이 ‘잘했다’ 등을 토닥여주는 순간을 상상하며 얼마나 잘 하고 싶었을까?

그런데 그런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자꾸만 어디론가 도망가는 자신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너의 눈물이 그 어떤 말보다 진심 어린 대답을 했다.

도, 도 그 눈물의 의미를 다 알 순 없다. 굳이 애써 그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다.

그저 네 몸이 기억하는, 우리의 마음이 찌릿하게 울리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너는 가슴 따뜻한 아이로 커갈 것이니까.  

   

“선생님은 왜 간디학교에 이렇게 오래 있어요?”

“음... 소소한 기쁨이 있으니까요.”    


맞다.

그 소소한 기쁨으로 나 또한 이곳에 머물고 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촉각이 너무 예민해져 버린 아이는 속옷을 입지 않는다. 입어도 안 입어도,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알 수 없는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할까만은 이 복잡다단한 사회 속에서 스스로 행복하게 그리고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작은 것들이 의외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 오늘은 팬티 입었어요 ‘라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기쁠 수 없다.

하루에 두세 마디 대답만 하던 아이가 '선생님'하고 불러만 줘도,

울지도 웃지도 않던 그저 있던 아이가 어느 날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을까 말까 고민만 해도,

참 좋다. 너무 기쁘다.    


자기 주위를 웽웽거리며 맴도는 파리 한 마리 때문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가슴을 치고 고함을 지르던 아이가 이제 무대에서 윙크를 날리며 하늘을 나는 듯이 춤을 추고 있다.

누군가에겐 5분이면 끝날 일을 며칠이 지나도록 마무리 짓지 못하는 아이는 친구들의 기다림과 배려 덕분에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결국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학교에서 게임을 한다? 결국 선생님들을 설득해서 게임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무대가 학교라니 엄청 기대가 된다. 만들면서의 에피소드가 너무 재미있어 기대감이 한껏 높아갔고 드디어 개봉박두. 어랏,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래도 학교가 참 멋있게 나왔다. 오~ 뭔가가 움직인다. 우와~ 우리는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게임은 집에서, PC방 가서 하면 된다.   

  

소소한 기쁨이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커다란 능력을 이곳 간디에서 배웠다.

반드시 잘하지 않아도,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깊이 고뇌했고, 치열하게 나누었고, 함께 웃었다. 그런 오늘이 쌓이고 쌓여 나의 삶이 될 것이다.

함께 행복한 우리의 삶이 될 것이다.   


*간디학교에서의 일상

-삐걱거리는 나무 데크 중간에 커다란 화분을 옮겨 놓았다. 데크가 부서질 위험? 화분에 부딪힐 위험? 어느 것이 더 위험할까?

-달빛이 길을 밝혀주지 못하는 날에 가로등이 없는, 별빛만이 쏟아지는 마을길을 걷는 것은 낭만일까? 위험한 일일까?

-테이블을 놓으면 식당이 되고, 테이블을 치우면 강당이 되는 그곳이 우리의 축제의 장이다.

-2박 3일 여행은 음... 그건 외출. 열흘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관계 맺음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 덕분에 집에서는 부부싸움이 잦을 수밖에.

 게다가, 대안학교 교사의 급여는 대학생 아르바이트 수준에도 못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 뽕‘을 맞으며 지금 이 곳에서, 이 순간을 즐긴다.


작가의 이전글 음미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