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나만 뜨거웠던 것은 아니었나보다. 당시 교사였고 지금도 여전히 이곳에 있는 패트릭과 라라샘의 뜨거운 환영으로 그 시절의 추억이 마구마구 떠오르며 또다시 이곳에서 첫출발을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이었던 딸이 중학생이 되었으니 참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사실 나는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차이를 모르겠다. 초보 교사 시절의 두려움과 어려움이 제법 컸던 시절이었음에도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만이 떠오르는 걸 보면 이곳 필리핀의 매력은 이미 충분한 것 아닐까?
이미 충분한 내가 이제 이곳에서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주인공은 너무나 사랑스런 간디학교 17기 아이들이다. 그들이 내가 느꼈던 그 여유로움과 따뜻함 그리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7년전보다 와이파이 속도도 조금 빨라진 듯하고, 웬지 단수도 잘 안될 것 같은 좋은 예감.
현재 온도 30도. 한국의 여름에 비하면 오히려 시원하다. 지금도 바람결에 날려오는 네로리 꽃향기가 체감온도를 1도는 더 낮춰주는 듯하다. 하지만 도착한 바로 다음날의 갑작스런 정전, 역시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한국에서는 남편이 두 딸을 데리고 스케이트를 타러 갔단다. 엄마 없는 아이들에 대한 애틋함... 따위는 없다. 분명 아빠가 엄마 몫 그 이상을 할테니까. 단지 남편이 너무 지치지 않기를, 지루하지 않기를 아니, 아내의 부재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떠나는 날 밤, 우리는 뒤엉켜 눈물을 흘렸다. 오랜 대안학교 생활을 하며 열흘, 보름, 한달의 여행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았던 우리는 각자의 심장을 꽉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을거라고, 울지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헤어질 시간 앞에서 우리의 심장도 그 힘을 잃고 말았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 우리는 넷이 아닌 하나였고 그리고 곧바로 슬픔의 눈물이 치유의 눈물로 변해갔다.
가는 길에 아빠가 사준 과자 먹고 좀 괜찮아졌어, 울고 나니까 속이 통쾌했어, 아직도 눈물이 날것 같지만 그래도 엄마 없이도 잘 지내 볼게,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긴 해. 월요일까지는 조금 슬플 것 같지만 그래도 그 다음은 극복해 볼게.
필리핀에 도착하기도 전에 받은 딸들의 편지는 혼자서 3개월을 보내기에 이미 충분한 에너지 그 이상이다.
어른인 나도 힘든 이 길을 우리 학교 아이들은 왜 가고 있는 것일까?
사실은 해외이동학습에대한 욕구는 아이들 본인보다 교사 또는 부모들이 좀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미 20대 30대를 거쳐온 우리는 이미 익숙해진 편안한 곳을 벗어나 조금은 다르고 또 불편한 세계로 들어갔을 때 그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새로운 자아의 발견이 얼마나 내 삶에 오랫동안 힘이 되어주는지 알기 때문이 아닐까.
20대엔 그랬다. 시간 있으면 돈 없고, 돈 있으면 시간이 없어 여행은 힘들다고.
10대, 얼마나 좋은가? 아직 학생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마음껏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절묘한 타이밍이지 않나. 그것도 적극적인 부모님의 지지와 후원 아래 말이다. 하지만 정작 10대 아이들은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모른다. 그저 내가 왜 이곳까지 와서 개미떼와 살아야하는지, 천장에 딱 달라붙어 있는 작은 도마뱀이 웬지 내 얼굴로 떨어질것만 같은 침대에서 왜 자야하는지, 왜 굳이 가족들을 떠나 지리지리한 더위를 참아내야만하는지... 말이다.
지금은 모를 수 밖에. 그래 몰라도 된다. 그것은 나의 몫이니까.
단 하루만에 새소리가 예쁘다고, 바람이 은근 시원하다고, 밥이 한국보다 더 맛있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친절한 필리피노를, 드넓은 바다를, 아름다운 산호초를 만나면 어떻게 표정이 바뀔지 나는 확실히 아니까 말이다.
7년만에 필리핀과 재회하는 나 또한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더욱더 다채로와지길 꿈꿀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