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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계곡 딛고 오르면
번뇌 떨쳐질까

두타산과 청옥산

by 장순영

복숭아 꽃피는 아름다운 곳, 흔히 아름답기로 유명한 명승지를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고 표현한다. ‘무릉’은 중국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등장하는 ‘무릉도원’에서 유래하였고 조선 선조 때 삼척 부사 김효원이 이곳에 그 명칭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두타산과 청옥산이 어깨를 나란히 하여 긴 계곡에 기암절벽을 빚고 맑은 물줄기 흘러내리는 무릉계곡, 보통 두타산 입구부터 시작해 용추폭포까지의 무릉계곡 물길을 용이 오르는 것에 견줘 용오름길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제 나도 용이 되고자 하네, 용이 되어 이제부터 하늘을 오르려 하네.”


한낱 속세의 범부에게 그 길을 내어주니 감사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늘이여! 무겁고 굴곡진 몸뚱이지만 가볍게 끌어당겨 주소서. 그리고 딛고 오가는 흔적마다 겸허와 긍정의 씨를 뿌려주소서.”


강원도 동해시와 삼척시에 접하고 있는 두타산頭陀山은 산 자체가 문화재이다. 명승 제37호이며 예로부터 삼척지방의 영적인 모산母山으로 숭상되었다.

며칠간의 폭우로 설악산, 오대산 등 강원 영서 지역의 산들이 대다수 입산 통제되었다는데 여긴 산행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초록이 붉게 물들어도 아쉬움이 남을까마는 이 여름, 너무 더워서였을까. 초록 색바래지기 전에 끌리는 발길 따라 찾아온 무릉계곡 청정 옥수는 흐를 때나 흐르다 멈추었을 때나 온통 진초록이다. 국민 관광지 제1호라는 타이틀을 거저 딴 게 아님을 보여준다.



나를 찾아 떠나는 곳, 거기가 산


계곡에 들어서자 온통 바위와 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오른쪽으로 저만큼 높은 곳에서 눈길을 잡아당긴다. 짙푸른 수림 속에서 관음폭포가 목 밑 가슴을 살짝 열고 실처럼 가늘게 물길을 흘러내린다.

계곡 초입의 거대한 암반 무릉바위는 1000명은 족히 머물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하다. 평평한 바위 바닥에는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이란 글씨가 새겨있는 걸 보게 된다. 각각 도교, 유교, 불교사상을 나타낸 글이라는데 멋들어진 필체로 새겨 무릉반석 암각서岩刻書란 명함을 지니고 있다.

두타산 삼화사, 신라 말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화사는 1905년 삼척지방 의병들의 거점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1906년 일본은 의병의 거점파괴라는 명목으로 대웅전, 선당 등 200여 칸에 이르는 건물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본래 동쪽 약 1.3km의 반릉 부근에 있었는데 1977년 무릉계곡 내 현재의 자리로 복구하여 이전한 것이다.

오른쪽으로 관음사를 두고 걷다가 학소대에 이르러 다시 한번 물빛을 감상한다. 아직 이른 아침인데도 한여름 뜨거운 열기가 몸을 휘감는지라 물이 가장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거무튀튀하게 변색한 바위가 차곡차곡 쌓인 단애와 굴곡 심한 암반 사이의 골짝으로 하얀 포말을 이룬 비단 폭이 미끄러지듯 흘러내린다. 잠깐의 휴식이지만 땀도 식히고 새롭게 에너지를 충전한 기분이다.

그러나 역시 그때뿐, 다시 땀에 흠뻑 젖고, 충전한 에너지는 줄줄 새어버린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용이 되고픈 허욕이 들어차서일까. 여느 때처럼 홀로 산행이긴 하지만 오늘은 유난히 긴장되고 다리가 무겁게 느껴진다.

잠시 학소대에 머물다가 목표한 곳으로 향한다


푹푹 찌는 더위에 얼굴이며 등줄기에 폭포수처럼 흐르는 땀, 잠시라도 쉴라치면 달려드는 모기떼. 고행길이긴 해도 우거진 녹음마저 거추장스러운 양 드러낸 바위와 단애들이 극복의 틈을 열어준다. 막바지 계곡물에 머리 푹 담그고 웅얼거린다.


“그래, 고행이 곧 수행 아니겠는가. 안락을 위해 여기 온 게 아니잖은가.”


잠시 흔들리던 마음을 가다듬자 다소나마 긴장이 풀리고 굳었던 다리근육이 이완된다. 한 뿌리 두 기둥의 금강소나무가 팔 벌려 위안하더니 넌지시 충고까지 건네준다.


“지나고 나면 죄다 일장춘몽, 그런 게 당신네 사람들 사는 일 아니던가. 비단 도포 화려하게 입었다가 흰 상복 걸치는 게 인간사 아니던가. 지금 힘들지만, 이따 내려와서는 듬뿍 희열을 느낄 걸세. 힘내시게나.”

“감사하이. 이 좋은 곳에서 만수무강 장수하시게.”


감사 인사 전하고 다시 올려다보니 두타산 정상, 청옥산, 고적대, 일컬어 해동 3봉이 아득히 멀다.


“아득히 멀고 높긴 하지만 세상처럼 험하진 않아.”


세상에 비해 저 모습을 어찌 험하다 할 수 있을쏜가. 아아! 또 얼마나 푸근한가. 무어든 용서하고 무어든 포용할 것처럼 저 자락은 얼마나 넓고 깊은가.



나를 찾으려 마냥 오르는 곳, 거기가 산


눈길을 끌지만 다녀오기엔 멀리 떨어진 관음폭포다


다시 걷는데 붉은 윤기의 금강송 굵은 줄기에 숱한 잡목들이 쓰러질 듯 기대서있는 게 보인다. 허름한 듯 보이긴 해도 세세히 살피면 새록새록 어우러진 모습이다.


“저처럼 살가운 어우러짐이라면 사람보다 나무들이 훨씬 낫지 않은가.”


속으로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금강송도 들었나 보다.


“우리네 소나무보다 짧은 그대들 삶일 진데 세상에 돌아가 아는 이들 만났을 땐 손 잡아주고, 함께 할 때 끌어안고 쓸어주며 다정다감 살아가시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노력하겠네. 그런데 두타산 금강송들은 오지랖이 꽤 넓구먼.”


대하면서 상대의 단점이 먼저 보이는 사람의 눈, 가까울수록 그 단점을 자신의 무기 삼는 사람의 행태, 추켜세움보다 깎아내림이 정치원리가 된 세상에 자연은 그 무어든 세상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학습의 터전이며 이치 터득의 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게 좋은 곳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오늘 청옥산까지 가는 건 힘들겠어.”


목이 타들어 가는 갈증으로 숨소리 더욱 거칠어지는데 할 수 있는 거라곤 발을 내딛는 것과 중얼거림을 멈추지 않는 게 고작이었다. 충분할 거라 여겼던 식수는 진작 바닥이 났다. 물 없이 박달령 지나 청옥산까지 갔다가 하산하는 건 무리다. 자신이 없다.


“그래, 이번엔 두타산까지만.”


목표치를 줄여 잡으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얼추 산등성이랑 눈높이가 맞는 걸 보니 정상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갈증과 허기 때문에 여전히 힘겹긴 하지만 시행착오 줄줄이 겪는 세상살이와 달리 온 만큼 갈 길이 줄어드는 게 산 아니던가.

정상 오르는 길목에 자리한 참나무 숲길은 짧은 골목처럼 보였는데 들어서고 보니 두타산행의 마지막 고행길이라 할 정도로 길고 버겁다. 남은 에너지를 모두 쏟아내고 입안이 마르는 갈증을 참아내고서야 정상석을 보게 된다.

두타頭陀, 인간사 모든 번뇌를 털어 없애고 물질 탐하지 아니하여 맑고 깨끗한 불도수행을 이르는 말. 이만큼쯤 살아 한두 번 수행하지 않은 이 없으련마는 닦아도, 털어도 끈적끈적하게 다시 들러붙는 티끌로 말미암아 나를 두타로 향하게 했노라. 부끄러움 잊으려고 왔건만 여길 떠나면 아등바등 쫓고 또 쫓기는 삶, 다시 부끄러워지려나.


나를 찾아 떠나는 곳, 거기가 산

나를 찾으려 마냥 오르는 곳, 거기가 산

어렴풋 나를 찾는 곳, 거기가 산

찾은 나를 잊어버려 다시 떠나는 곳, 거기가 또 산


아무튼, 심한 고독을 뚫고 헤쳐 나와 빛을 본 기분이다. 갈증과 허기를 견디고 밟은 정상은 비록 혼자지만 외롭지 않았다. 부서지고 깨지면서도 비워내지 못하고 더욱 채워 넣기만 했던 원망과 한, 끝내 훌훌 털어버리지 못했던 교만 덩어리. 애태우며 부여잡았으나 손가락 틈으로 새어버린 자존감…….

그 허풍 같고 속절없던 추상들을 끌어안고 되풀이하며 살았었다. 이런 것들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풀어내게끔 산은 가르침을 주었었다. 차라리 부러지고자 했건만 산은 휨의 처세를 일러주었다.

여기 말고 세상 어느 곳에 이만한 환희의 장소가 있던가. 여기 아니면 세상 그 어디라서 내 자존감 꼿꼿하게 세워주던가. 깨달음을 반복하지 않으면 다시 바람에 흩어지는 왕겨가 될까 보아 산에서 내려와 또 오르게 되고, 다시 찾으며 그 깨우침을 복습하곤 하는 것이다.



어렴풋이 나를 찾는 곳, 거기가 산


아아, 두타산은 자존감까지 세워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두타산엔 식수 보충할 곳이 없다고 듣고 왔는데 30m 아래 샘터가 있단다.

너끈히 100m는 될법한 거리에 두타샘이 있다. 적진에서 군량미를 보급받은 기분이랄까.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 이러할까. 이제까지 물이 이처럼 반가운 적이 또 있었던가. 얼음처럼 찬물을 빈 병마다 채우고 머리까지 감으니 힘이 부쩍 솟기 시작한다.


‘동해 해오름산악회 2007년 10월 14일’


그 후 오랫동안 해오름산악회란 곳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분들 덕분에 박달령 지나 청옥산까지 향할 수 있게 됐다.

일기예보에 맞추듯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데다 여기서 내려가야 어둡기 전에 하산할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망설이다가 청옥 씨를 만나기로 했다. 여기까지 왔다가 청옥 씨 손을 못 잡고 가면 두고두고 아쉬울 것만 같았다.

허기를 채우고 백두대간 3.7km 능선을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후우아, 숨이 찰 땐 이정표가 되레 주눅 들게 할 때가 있다. 인생이 그러하듯 거리가 무어 그리 중요한가, 방향만 제대로 잡으면 되지. 이정표 또한 산이 주는 또 하나의 큰 가르침 아니겠나. 거침없이 박달령을 지난다.

청옥!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그녀의 매력적인 모습이 살포시 드러나겠지. 예로부터 보석에 버금가는 청옥靑玉이 발견되고 많은 약초가 자생하여 청옥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래서 청옥이란 여인은 아름답고 섹시한데다 그녀가 있는 공간 분위기도 무릉도원에 버금갈 거란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실제 만나본 청옥 씨는 매력적이기는커녕 무뚝뚝하고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산골 노파의 이미지라 약간은 맥이 빠지고 말았다. 정상의 공터도 무언가를 지으려는지 건축자재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강원도 동해시와 삼척시에 걸쳐있는 청옥산(해발 1404m)은 두타산과 연봉을 이뤄 북으로 고적대(해발 1354m), 북서로 중봉산(해발 1284m)과 이어진다.

조선 때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전국각지에서 대들보가 될 만한 목재를 구하였는데, 청옥산 주봉에 있는 소나무가 가장 적합한 재목으로 결정되어 하장천에서 뗏목으로 운반되었다고 한다.

훌륭한 조상을 둔 주변의 소나무들에 눈길을 주었다가 바로 하산을 서두른다. 맞선자리에서 실망하고 일어서는 기분이 들긴 했지만 그런 감성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다. 무릉계곡 날머리까지 6.7km.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혹여 계곡물이라도 불어나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청옥 씨, 안녕! 나중에 또 보게 되면 그땐 엷게나마 눈 화장이라도 했으면 싶군요.”


마음은 급했지만 가파른 내리막길은 빠른 걸음을 거부한다. 한참을 내려와 잠시 숨 고르고 바라보는 바위마다 많은 얼굴들이 비췄다가 사라지고 우여곡절 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다가는 스러진다.

깊은 산속, 나무에 앉아 비를 피하는 파랑새 한 마리가 보인다. 피하려 해도, 나뭇가지를 지붕 삼아 비를 피하려 해도 파랑새는 날개를 펼칠 수 없을 정도로 흠뻑 젖고 만다. 가슴속으로 처연하게 스며드는 장맛비를 그대로 맞으며 파랑새는 흐느적거렸었다.


‘산행은 명상이다.’


거리에 지치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스스로 만든 명분에 어긋났던 산행이다. 비를 피해 잠시 머물렀건만 맑은 명상이 되지 못하고 모진 과거의 서글픈 회상만 떠올라 파랑새는 힘을 뽑아 날갯짓한다.

굵어진 빗방울을 그대로 맞으며 계곡 상류에 이르러 시원한 계류에 빗물과 땀으로 범벅된 육신을 씻으니 눅진했던 피로가 조금은 가시는 듯하다. 역시 여름엔 산에서 내려오면 머물게 하는 곳이 물이다. 마중 나온 임만큼이나 반가운 게 물이다.

사람人이 산山에 있으면 신선仙이 되고, 계곡谷에 있으면 속인俗이 된다고 글자가 보여주지 않는가. 선인이든 속인이든 산에 계곡이 있고 그리로 물이 흐른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오르려고 떠나려 할 때 물 굽이쳐 배웅하는 곳, 떠나 땀에 젖노라면 바로 그리워질 처소, 수량 풍부한 계곡이 있기에 산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건 분명하다.

무릉계곡 상류까지 내려와 다시 보는 암릉이 축축이 젖었다



찾은 나를 잊어버려 다시 떠나는 곳, 거기가 또 산


변덕이 반복되긴 했지만 별 탈 없이 처음 목표한 대로 산행을 마쳤다. 그런데 내려오자마자 속세로 나가서 얼큰한 취기에 몽롱해지고픈 생각이 들어차는 게 아닌가. 두타의 의미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속인의 본분을 되찾고 만다.

수량 불어난 저녁나절 무릉계곡에 삼복더위도 녹고 안개도 녹아 흐른다. 나 또한 눅진한 피로 그대로 녹아버리고 싶다.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던가, 아님. 물은 산에 속한 것이던가. 결국,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공염불 헛수행에 불과한 걸음이었던가. 어디 깨우침이 억지로 되는 일이던가. 깨우치려는 의식조차 떨쳐버리지 못함이 부질없는 욕심 아니겠는가. 그저 땀 젖은 육신 씻어주는 것에 만족스러우면 그 자체가 득도 아니겠나.

옳거니! 화답하듯 폭포는 더욱 쩌렁쩌렁한 소리를 내지르며 수직으로 가르마를 탄다.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산행이 될 거로 생각하며 아득히 높고 먼 백두대간을 올려다본다. 뿌듯하다.


이 산,

아득히 높고 끝없이 멀어

숨 죄는 깔딱 고개,

허리 붙드는 좁은 능선

걸음걸음 내디딜 때마다

오래도록 흐르고 아직도 내내 흐르는

그 세월처럼 여겨지더라.

그날들,

고독이 가장 가까운 벗이었고

일그러진 고통 당연한 삶 아니었던가.

분노와 미움,

안쓰러움과 설움

축축이 젖어 뿌옇던 먹빛 시절

무심의 희열로 말려가며

셋이나 되는 백두대간 봉우리 황급히 내딛는데

지난날 아린 통증

오로라 화사한 섬광만큼은 아니더라도

푸근한 빛으로 바꿔

희열로, 열정으로 되살리려 애썼지 않았는가.

짓눌린 삶의 무게

정든 이들과 나눠지고 사랑하는 이들과 이고 지며

흐르듯 몸 맡겨 숱한 걸음 내딛지 않았던가.

높이 올랐기에 멀리 내다보라 혜안까지 일러주던

능선 곳곳 풀 향 그득하고

미소 온화한 금강소나무 여운 아스라한데

여기 이 산 내리막,

조금 전 새긴 두타의 의미마저 벌써 망각한 것이던가.

칼바위 해넘이 하산 길,

자아 위주의 이기,

쉬이 버려지지 않는 욕구

산등성이 휘감는 운무 속에서 다시금 꿈틀거리는걸

어쩌지 못하누나.

아직도 겪을 숱한 날들,

어쩜 죽을 때까지도 고쳐지지 않을 속된 마음들이

되레 삶의 무게로 오지게 환원될까 보아

어깻죽지부터 무릎 정강이까지

전해지는 찌릿한 통증

여기,

무릉 빠른 계류에 아주 흘려보낼 수는 없는 거였는지.



때 / 여름

곳 / 무릉계곡 관리사무소 - 삼화사 - 학소대 - 옥류동 - 소금강 - 두타산성 - 산성폭포 - 두타산 - 박달령 - 청옥산 – 주목 군락지 - 학등 - 문간재 - 하늘문 - 관음암 - 삼화사 - 원점회귀



무릉반석
관음폭포
오름길 풍광
너무 힘들게 오른 두타산 정상
두타샘
184053424E3A3C9023 박달재
청옥산 하산로 풍광
다시 무릉계곡으로 무사히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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