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딛는 곳마다 끈적한 원효의 흔적

경남 양산의 정족산과 천성산

by 장순영

경상남도 양산시에 소재하며 가지산 도립공원 내에 있는 천성산千聖山은 예로부터 깊은 계곡과 폭포가 많고 또한 경치가 빼어나 금강산의 축소판이라고 불리었다.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름이 난만큼 조망이 뛰어나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원효산과 천성산으로 나눠 표기되어있었는데 최근 양산시에서 원효산을 천성산의 주봉으로 하고, 이전의 천성산을 천성산 제2봉으로 그 명칭을 변경하였다.

마찬가지로 가지산 도립공원에 속하며 낙동정맥 상의 영축산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렸다가 천성산과 어깨를 맞대고 웅장하게 솟은 산이 정족산이다. 솥발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정족산鼎足山이 그 한자어이다.



사방 조망이 시원하게 트인 정족산


내원사 계곡 주변으로 바이올렛 금창초가 보이고 또 다른 야생초들이 무수히 피어났다. 계곡 안에는 햇살 듬뿍 받은 물살이 반짝거리며 유속을 늦추고 있다.

용연리 경부고속도로 위를 지나는 육교를 건너면서부터 시작되어 내원사 입구까지의 6㎞ 계곡을 낀 천성산 내원사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81호로 지정되어 있다.

심성교 옆에 세워진 이정표에 성불암, 금봉암, 금강암, 안적암, 조계암, 대성암, 원효암, 미타암 등이 표시된 걸 보니 89 암자를 세웠다는 원효대사의 업적을 실감하고도 남음이 있다. 심성교를 건너 수령 700년에 이른다는 우람한 소나무가 오는 이를 품에 안을 것처럼 반긴다.


“자기 생각이 곧 자신의 운명이다. 밝은 삶과 어두운 삶은 자신의 마음이 밝은가 어두운가에 달려있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산령각에 써 붙인 게시 글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백번 공감하는 내용이다. 산령각에서 내원사까지도 아스팔트 차도를 걷지만, 양옆의 우거진 숲이 길을 호사스럽게 꾸며준다.

원효대사가 동래 기장의 장안사 척판암에 있을 때, 중국 오대산 밑의 큰절이 무너지려는 것을 보았다. 원효가 판자에 ‘해동사미원효천승구제’라고 쓰고 하늘로 날렸더니 판자가 오대산의 절 상공에서 맴돌았다. 법회를 하던 승려들이 그걸 구경하러 나왔을 때, 절이 무너져 승려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 내원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부디 저희를 거두어주십시오.”


1000명의 당나라 승려가 신라로 와서 원효의 제자가 되겠다고 하자 원효는 그들이 거주할 곳을 마련해야 했다. 원효는 내원사 부근에 이르러 상·중·하 내원암 등 89개의 암자를 세워 그들 1000명을 거주시킨다.

그리고 천성산 상봉에서 화엄경을 강론하여 1000명의 승려에게 불도의 진리를 깨닫게悟道 하였는데 이때 화엄경을 설법한 자리를 화엄벌이라 부르게 된다. 또 중내원암에는 큰북을 달아 산 내의 모든 암자에서 다 듣고 모이게 했으므로 집붕봉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 후 1000명이 모두 성인이 되었다 하여 산 이름을 천성산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아! 원효대사는 이제까지 알아왔던 것보다 훨씬 우러러봐야 할 분이었구나.”


지금은 비구니 수도 선원으로 널리 알려진 내원사 경내를 둘러보고 명함만으로 평가해왔던 원효의 참 가치를 새로이 인식하게 된다.

옥류교를 건너서도 계곡을 옆에 두고 걷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묘가 보이는데 꾸며놓은 시설이나 관리 상태로 보아 대대로 품격 있는 집안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호젓하게 걷기 좋은 길이 이어진다. 서서히 주변이 밝아지며 영축산과 신불산이 눈에 들어온다.

올라서야 할 천성산 능선이 아득하다. 다시 나타난 철탑을 지나 헬기장에서 꽤 올랐다 싶었는데 자동차들이 세워져 있다. 솥발산 공원묘원에 몇몇 사람들이 성묘하고 있다.

공원묘원을 질러올라. 정족산(해발 700.1m)에 닿자 사방으로 조망이 트였다. 이곳 정상에서 동쪽 주 능선에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무제치늪이 있는데 6천 년 전에 생성되어 학술적 연구가치가 크고 200여 종의 곤충류와 260여 종의 습지식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옛날 천지가 개벽할 때 온통 물바다가 되었으나 정족산은 솥전 위만큼만 남고 물에 잠겼다는 설화가 전한다. 정족산에서 가게 될 천성산 쪽의 산세는 보는 이들을 마구 끌어들일 것처럼 푸근하다.



영남알프스의 변방, 탈속의 성지 천성산


다음 가는 곳 주남 고개까지 2.5km의 거리이다. 왼쪽으로 천성산을 보고 정족산을 내려서서 임도를 따라 쭉 직진하면 남방 지맥 분기점에서 우측으로 선회한다. 임도를 따라 주남 고개에 이르러 주남정이라는 정자에서 목을 축인다. 이곳까지도 차량을 이용해 오를 수 있다.

바로 옆으로 남양 홍 씨 수목원이 있고 곧이어 영산대학교와 산업단지를 내려다보게 된다. 영산대학교로 내려가는 길과 노천암으로 향하는 길이 갈라지는 사거리에서 임도를 지나 제대로 된 산길을 따라 걷는다.

천성산 2봉이 지척에 보이고 영산대와 짚북재가 나뉘는 갈림길을 지나 천성산 공룡능선 입구도 지난다. 나무계단을 올라 천성산 2봉(해발 855m)에 닿았다. 바위 봉우리인 2봉 정상석에 비로봉이라고 덧붙여 적혀있다.

52. 여기 2봉에서 주봉인 1봉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jpg 여기 2봉에서 주봉인 1봉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


공룡능선 방향을 보며 다음에 다시 올 기회가 생긴다면 저 길과 만나리라고 마음을 먹으며 광활한 영남알프스 마루금을 길게 내다본다. 만감이 교차하는 걸 느끼게 된다.


“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


되뇌고 또 읊조리면서도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고 두려움처럼 혹은 그리움처럼 거리를 두고서 품고만 있는 그곳, 거길 바로 옆에서 바라보며 해를 넘기기 전에 품으리라고 다짐한다.

천성산 주봉과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바로 은수 고개로 내려선다. 천성산과 미타암으로 갈라지는 고개이다.

오른쪽으로 달음산, 멀리 장산을 눈에 담고 걷다가 홍룡사와 원효암이 분기되는 원효암 갈림길에서 800m 거리의 1봉에 올랐다가 다시 이리 내려와야 한다. 이 지역은 지뢰 매설지역으로 군에서 지뢰 제거작업을 실시하였으나 다수의 미제거 지뢰가 산재하여 있으므로 완전 수거 시까지 지뢰지대 출입을 통제한다고 적혀있다.

몇 해 후에 다시 와서도 저 안내판과 통제 울타리를 보게 된다면 그건 군부대의 나태함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화엄늪에 다다랐다. 푸른 하늘, 맑은 기운이 생생한 늪 길을 걷게 되자 강원도 양구 대암산의 용늪이 떠오른다.

늪에 자생한 식물들로 만들어진 퇴적물을 이탄泥炭이라 하는데 자연환경 변천의 귀중한 기록이 된다. 억새 군락지 화엄벌에 있는 산지습지인 화엄늪은 이러한 이탄층이 형성되어 있고 앵초, 물매화, 끈끈이주걱 등 다양한 습지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소중한 자연자산이라 초소를 세워 보존,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화엄늪 탐방로는 세상을 둘러보는 하늘 위의 조망공간이다. 장쾌하고 호방하게 이어지는 영남알프스의 마루금에서 눈길을 돌리자 우측으로 금정산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마산의 무학산과 김해의 신어산을 포함해 남동부 일대의 고산 준봉들을 모두 가늠하며 하늘길을 걸으니 기분이 우쭐해진다. 강원도 선자령과 하늘 목장의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여 더욱 친근감이 생긴다.

53. 정상 아래의 기암을 지나 천선1봉에 다다르게 된다.jpg 정상 아래의 기암을 지나 천성 1봉에 다다르게 된다


늪을 지나 돌탑이 쌓여있는 786m 봉에 도착했다가 다시 용주사 갈림길로 내려서 계속 직진한다. 수더분하고 참한 산길이 계속된다. 526m 봉이라는 걸 인식하고 거기서 내려서면 임도가 나온다. 여러 곳에 길을 닦아놓아 유난히 임도가 많다.

넓은 고원 분지에 원효봉이라고 덧붙인 천성산 주봉(해발 922m)이 있다. 78m가 모자라 1000m가 넘는 영남알프스 종주 코스에서 낙방한 천성산이다. 정상석 옆으로 둥글게 돌을 쌓아 평화의 탑이라는 나무 팻말을 세워놓았다. 2봉인 비로봉과 공룡능선, 화엄 능선이 방해물 없이 뚜렷하게 이어져 보는 이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 준다.

가장 먼저 동해의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원효봉이라 동쪽 바다의 해돋이를 떠올리다 보니 세상은 바다에서 열려 산에서 밝아졌다가 도시에서 어두워진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해의 움직임에 따라 사는 게 사람 사는 순리야.”


해가 지면 그때 저녁이 되니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먹는 게 대다수의 일상이다. 삶의 순리나 일상을 거스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가능한 대자연에서 많은 시간을 밝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그득한 건 어쩔 수 없다.

갈림길로 다시 돌아와 원효암으로 내려서며 부산 기장군 일대의 마을이 고만고만한 언덕 아래로 늘어서 있는 정경을 보게 된다. 원효암은 고도 900m에 위치하여 부산과 양산, 울산지역을 조망하고 맑은 날엔 대마도가 보이는 최적의 전망장소에 자리 잡은 암자이다.

신라 선덕왕 때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형제의 결의를 맺고, 이곳 원효암과 의상대에서 각각 수도에 들어갔다. 7년이 지난 가을밤, 어느 부인이 찾아와 하룻밤 쉬어갈 것을 간절히 청했다.


“부인,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의상은 거절했으나 원효는 여인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여인이 산기가 있자 아이를 받은 후 여인의 원대로 목욕까지 시켜주었다.

여인은 원효에게 자신이 씻은 물에 목욕할 것을 권하고는 아이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원효는 그때야 관세음보살이 자신을 시험했던 것임을 알게 되고, 물에 목욕하는 순간 도를 깨우치게 된다. 늦게 찾아온 의상도 남은 물에 목욕하여 도를 깨우쳤다.

의상은 자기 수행에만 매진하여 여인으로 현화한 관음보살을 알아보지 못했는데 원효는 순수한 자비심으로 여인을 맞아들여 출산과 목욕까지 도왔고, 끝내 관음보살의 도움으로 성불할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소승적인 자리自利의 수행과 대승적인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수행을 대비시켜 세상 사람들은 원효의 불교를 대승불교라 하고, 의상의 불교를 소승불교라고 하였다. 전자가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참다운 길임을 보여주고 있음이다.

원효대사의 일화에서처럼 원효암은 많은 수행자의 탈속 성지이자 불자들의 귀의처이기도 한 곳이다. 차량 통행이 가능하니 요즘으로서는 더더욱 시간을 당겨 수도에 몰입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원효암 내의 생수로 남은 갈증을 씻어내고 계단을 내려서지만 개념만 익힌 대승의 오묘함은 한낱 보통 사람에게는 그저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불가사의함이 아닐 수 없다.

양산시와 그 위로 솟은 금정산을 눈에 담고 완급이 거의 없는 평지 산길을 걷다가 편백 숲길로 내려선다. 홍룡사 일주문에서 바로 주차장으로 내려서며 천성산 처녀 산행이 마무리된다.

하산로에서 위로 벗어나 들르지는 못했지만, 홍룡사도 원효대사가 당나라의 승려 1000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할 때 창건한 사찰로 승려들이 절 옆에 있는 폭포수 아래에서 몸을 씻고 원효의 설법을 들었다고 한다.

이 홍룡폭포는 높이 14m인 제1폭과 10m인 제2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느 폭포에서 설법을 듣건 그 낙수의 울림이 컸을 텐데 설법을 하는 원효의 목소리는 얼마나 컸어야 했을까.

이래저래 원효대사의 불가사의한 면모를 거듭 되새김하는 천성산 산행이라 하겠다.



때 / 초가을

곳 / 용연마을 내원사 계곡 - 내원사 - 정족산 - 주남 고개 - 천성산 2봉 - 은수 고개 - 화엄벌 - 천성산 1봉 - 원효암 - 흥룡사 - 홍룡사 주차장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