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매일 말을 타느라 넓적다리에 살 붙을 새가 없었는데 하도 오랫동안 말을 타지 않아 넓적다리에 뒤룩뒤룩 살이 찌고 말았습니다. 나이는 자꾸 먹어가는데 정작 이뤄놓은 공도 없이 세월을 까먹고 있으니 한탄스러워 눈물이 흘렀습니다.”
한나라 황실 후예인 유비는 의형제 결의를 맺은 관우, 장비와 군사를 일으켰으나 아직 자기 세력을 지니지 못했다. 황건적의 난을 평정하고 여포를 무찔러 조조에 의해 좌장군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웅대한 야망을 품고 있는 두 사람이 끝까지 협조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조조에 반대하여 그를 죽이려던 계획이 탄로 나 가까스로 탈출해서 형주의 유표에게 몸을 의지하던 때였다.
“의논할 일도 있고 하니 같이 술 한 잔 합시다.”
형주 관할의 신야라는 작은 고을을 맡고 있던 유비는 유표의 부름을 받고 형주성으로 갔다. 그런데 유표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용변을 보고 온 유비의 눈가에 눈물 자국이 보여 유표가 그 연유를 묻자 유비가 눈가를 문지르며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유표는 같은 황족인 유비를 잘 대해주었으나 유비는 고마우면서도 현실에 안주하는 듯한 유표가 마음에 차지 않았다. 천하를 함께 꾀할 큰 그릇은 더더욱 아니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군사를 일으킨 지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나 그 시간은 유비에게 고행과 비운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나이도 50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수가 말을 타고 전장을 누비면 넓적다리에 살이 오를 틈이 없다. 비육지탄, 10여 년을 한가롭게 지낸 유비의 넓적다리髀肉에 살이 붙고 품은 뜻을 이루지 못하니 한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유표는 유비를 성심껏 대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비가 독자 세력을 키워 독립할 것을 경계하여 유비에게 독립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때 조조를 쳐야 합니다. 느긋하게 수수방관하실 때가 아닙니다.”
당시 조조는 원 씨 형제가 서로 싸우는 걸 틈타 하북 지역을 점령해오고 있었고 유비는 유표에게 조조의 후미를 쳐야 한다고 계속 진언했다.
하지만 유표는 조조의 북진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따라서 조조는 배후의 위협에 신경 쓸 필요 없이 하북 공략에 집중할 수 있었다. 후에 유표도 조조의 뒤를 치지 않은 걸 후회했지만 이미 바람이 쓸고 간 뒤였다.
이런 곡절을 겪은 이후, 유비는 형주의 새 주인이 되면서 넓적다리 살도 빼고 촉나라를 세우는 확고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