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일권 Mar 23. 2024

내 마음의 파도

고래가 사는 세상

 언젠가 아버지가 가져다 안방벽에 걸어놓은 동양화 하나가 있었다. 바다를 뒤로 서있는 정자 그림인데 그곳의 배경은 양양 낙산사 근처의 의상대라는 곳이라 했다. 그런데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이 아버지 여자친구라는 얘기를 이모로부터 듣고 나니 그림을 늘 보게 되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아 어느 날 아무도 없을 때 먹물을 풀어 티가 잘 안 나는 바위 등 여기저기 덧칠을 하고 나니 마음이 개운해짐을 느끼는 그런 심술을 부려 봤다. 그런데도 가끔 오시는 아버지는 아무 눈치도 채지 못하시는 거 같았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작품은 완벽하게 성공하였고 마음속에 상쾌한 웃음만 새어 나왔다. 그 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여러 번 이사를 다니다 보니 그 그림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그 후 세월이 한참 흐른  어느 때인가 여름휴가를 낙산 근처 호텔에 묵게 되었는데 그때 우연히 근처에 그때 그 그림에서 보았던 의상대 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도 알 수 없는 감회에 젖어 그곳을 찾아가게 되었고 내가 장난질 친 그 그림의 실제 장소를 보게 된 것이다. 의상대에서 바라본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은 바라보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고 이 아름다운 장소를 그려주셨던 그분에게는 정말 죄송했다는 마음을 늦게나마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마음이 답답할 때면 찾게 되는 낙산사 홍련암, 그 가는 길의 의상대는 특히 겨울에 더욱 찾고 싶어 지는 나만의 여행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2~3 간 걸려 도착하는 그곳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 배호의 파도를 생각나게 하는 아련하고 그리운 내 마음이 담긴 그런 곳이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숨 가쁘게 절을 하고 홍련암을 나설 때 암자뒤로 보이는 풍경은 차마 내 눈에 다 담을 수 없는 동해의 절경이었다. 바다 저편으로부터 밀려오는 흰 파도를 안아주는 큰 바위, 그 위로 솟구치는 하얀  물거품 속에 나의 모든 번뇌와 망상 함께  쓸려 가기를 바라는 늘 그런 마음으로 그곳을 찾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강릉 중앙시장 안에 있는  삼숙이 매운탕집에 들러 소주 한잔 곁들이는 즐거움 또한  오는 발걸음을 가볍게 만드는 나만의 여행 방법이 되었고 이런 시간들과 함께 영원한 여행자로

남게 되길 소망한다.

작가의 이전글 화를 다스리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