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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권 May 11. 2024

부처 앞에서 고해성사

고래가 사는 세상

 도로 도로 지미사바하~매일 아침 불경소리로 아침을 깨우는 것이 습관처럼 돼버렸습니다. 마음을 정리한 후 하루를 시작하려고요. 오늘따라 낭랑 하게 들리는 목탁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눈을 감습니다. 소원 성취를 이루어준다는 바람에  불경을 듣기 시작한 지 몇 달은 지나간 거 같은데 나의 기도빨이 받질 않는 건지 뭐 별 좋은 일은 없었지만 덕분에 마음은 편해졌기에 더 이상 소원은 빌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작정하고 당신 앞에서 고해성사를 해볼 참입니다. 부처님 제가 세상을 잘못 살았는지도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면 제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인생이 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닌 줄 알지만 돌이켜 보면  안타깝게도 세월을 낭비하며 지내온 것 같습니다. 어찌 됐던 처음 해보는 고해성사이니  우선 살아오는 동안 저지른 잘못은 털고 가야겠지요. 요약해서 말한다면 첫째 가정을 우선시하지 않은 것과 가족을 풍족하게 만들어주지 못한 것 그리고 내가 외도한 사실이라 생각합니다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다 그랬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 스쳐가는 바람과 같았다고 말이지요. 그 외에 이런저런 잘못도 있었겠지만 딱히 생각나는 건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저마다 죽음을 껴안은 채로 살아가면서도 헛된 희망을 품고 허우적거리며 살아간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노자의 말 중에 적게 가지는 건 소유이고 많이 가지는 건 혼란이라 하더군요. 그러나 나는 한 번만이라도 혼란스러워 봤으면 하는 마음은 버릴 수가 없네요. 그릇은 비어 있어야만 무엇을 담을 수 있다는 말도 기억합니다만 깨달음이 부족해서인지는 그 말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인지는 몰라도 난늘 비어둔 것 같았는데도  담은 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화무는 십일홍 이란말 누구나 알면서도 그 순간의 짜릿한 유혹을 비켜 가기가 어려운 것처럼 누구나 마음을 완전히 비운다는 것은 어려운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저는요 남은 인생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그냥 바람에 흔들리는 강아지풀처럼 살생각입니다. 오래전 동경에서 가마쿠라 가는 길에 잠시 스쳐 지나간 어느 역 앞 숲 속의 관세음보살이 눈에 아른거려 몇 년이 지난 후 기어코 그곳을 다시 찾아간 적이 있었지만 첫사랑의 기억처럼 그냥 마음속에만 남겨둘걸 하는 마음이었지요. 그래서  지난 세월에 대한 그리움이나 미련 같은 건 절대 되돌려 보지 않을 생각입니다. 한번 눈에 들어오면 꼭 이루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성격이 나 자신을 힘들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작은 소원만 들어주신다면 짧게 살아도 상관없다는 생각 속에 관음성지라는 보리암. 홍련암등 여러 곳을 찾아다녔는데도 지금 까지 아무 응답이 없으니 세상 믿을 놈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더군요. 그렇다고 가늘고 길게 살라는 얘기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튼 살면서 맘 놓고 울어본 기억이 없기에 울 줄도 모르는 내가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언젠가 저세상에서 날 부르는 날이면  나는  은하철도 999를 타고 떠나는 철이처럼 꿈속에서 보았던 별들이 가득한 도시를 찾아가고 있을 겁니다. 촌색씨 같은 코스모스 위로 따가운 햇살이 녹아내린 오후 멍한 마음을 추슬러 보지만 웃음 마져 잊어버린 나의 흐릿한 눈으로는 그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군요.  이제 모든 것과의 이별만이 남은 마음속에 내년에도 꽃피는 봄이 길 기다리는 그 그리움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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