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앞에서 나를 바라본다.
고래가 사는 세상
우울함이 안개처럼 스며드는 밤을 혼자 지키기는 외롭고 버겁다. 화를 삭이려 명상하듯 자세를 고쳐 앉아보지만 창밖으로 소리 지르고 싶은 밤이다. 차르다시(Czardas) 음악 속에 나를 던져보아도 끓어 오른 분노는 오히려 춤을 추고 있다. 이까짓게 뭐라고 참 마음이 아프다. 천륜을 버릴 수도 없고 이게 나의 운명이니 감추고 억누르다 떠날 수밖에. 적군인지 아군인지 구별 안 되는 마누라까지 위로 섞인듯한 말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도 당해 보란 듯이 실실 웃는 모습이 엿보이니 말리는 시누이 같다. 화산에서 흐른 용암도 때가 되면 식어 가듯이 나의 화도 언젠가 잠재워질 것이기에 모든 걸 다 토해 내며 나를 치유 중이다. 낮에 지치도록 걸으면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한밤중 깨어나니 다시 밀려오는 회한 속에 지난 일들을 삭히려 애를 써본다. 참 피곤한 인생여정이었다. 산산이 부서져서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고 떠난다만 너희들과의 간격이 너무 넓었다는 확인만 하였다. 며느리가 던지는 당돌하지만 직선적인 말이 일리도 있기에 수긍하면서도 나 자신 서서히 허물어지는 걸 느꼈다.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이 녹녹지 않았음을 이제야 실감하게 되니 나에게 아버지라는 호칭은 사치스러운 표현이었다. "자업자득 내게 던지기에 꼭 알맞은 말이다. 눈을 감으니 내 앞에 놓인 국화꽃 속에서 아무 의미도 표정도 없는 내가 보였다. 그냥 남은이들의 기억 속에서 나의 모든 게 지워지길 바라며 이제 그만 떠나고 싶다. 결국 나의 종착지는 허공인데 물거품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떠밀리듯 떠나게 되어 아쉽다는 생각 그것마저 집착인 듯 , 말러의 교향곡과 함께 너그러운 새벽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