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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권 Oct 21. 2024

똥(便) 속에서 세상을 만나다.

고래가 사는 세상

오래전 동네 골목길에는 개똥은 말할 것도 없고 한 달에 한 번인가 변소 치우날 똥지개가 흘리고 간 인분 냄새로 온 동네가 들썩였다. 연탄재로 그 흔적을 덮어보지만 그 냄새가 한이틀은 지나야 진정이 되는 거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큰 길가엔 짐 싣고 달리는 말이나 소달구지가 흘린 똥냄새가 자연스레 도시에 스며들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똥은 사람들과 꽤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인분은 밭의 거름으로 아프리카에서는 소똥을 벽에 발라 해충 퇴치를 했고 몽골에서는 땔감으로 사용했으며 코끼리 똥은 종이 만드는 데 사용하는 등 똥은 다방면에서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되어 왔다. 거기다가 꿈에 똥을 밟으면 돈이 들어온다는 길몽이라니 어디 하나 버릴 게 없는 것 아닌가. 그런 똥이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긴 했지만 아파트 단지 내에서 몰래 버리고 치우지 않은 개똥은 늘 층간소음 문제와 함께 단지 내 방송에서 나오는 단골 멘트가 되고 있다. 오래전에는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유럽도 뒷골목뿐만 아니라 마차가 다니는 큰길도 똥으로 뒤범벅이 된 아주 더러운 도시의 모습이었다고 들었다. 그래선지 비데에 양변기까지 만들었으니 그들은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같았다.   전에 산토리니 여행 중 당나귀들이 지나간 골목길에서 풍겨오는 그것들의 똥냄새는 오랜만에 맡아보는 거라 선지 향수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이건 아주 오래전 얘기지만 한 학기 밖에 못 다니고 서울로 전학을 왔었던 춘천 봉이국민학교 1학년때 일이다. 집까지 오리 정도 거리를 혼자 걸어 다녔는데 어느 날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똥이 마려워 참고 또 참았지만 결국 반바지 아래 종아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큰길을 피해 논둑길을 따라 걸으며 논물에 다리를 씻고 호박잎으로 다리에 묻은 흔적을 지우던 나의 모습은 지금도 짜릿하고 생생하게 오랜 필름 속에 남겨져 있다. 겨우 집에 도착했었던 그때를 기억하면 십년감수란 말이  생각나며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전에 홍콩 사는 손녀가 유치원 다닐 때인데 오후에 구경삼아 데리러 갔더니 담당 선생님이 웃으면서 오줌을 지리고 한구석에서 울고 있다고 전했다. 집까지는 얼마 안 되는 거리였지만 창피해할까 봐 택시를 태워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도 옛날에 그런 적이 있었다고 달래며 데리고 온 적이 있는데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요게 그 말을 기억하고는 할아버지도 똥 싼 적이 있다고 광고를 하며 떠들어 대기에 지난 일이라고 함부로 누설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란 말에서 진짜 약으로 사용했는지가 궁금했는데 허준의 동의보감에 보면 실제 약재로 사용 됐다고 했다. 그러니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똥의 위상은 정말 대단한 거 같았고 쾌변 또는 색깔로  신체의 건강함을 나타내는 좋은 신호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가끔 꿈속에서는 똥이 깔린 화장실 바닥에서 똥을 안 밟으려고 피해 다녔는데 그래선지 적은 금액의 복권 도 당첨 되질 않는 이유는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엔 돼지우리 안의  똥바닥에서 그놈들과 함께 딩구르는 꿈이 내게도 오길 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오래전 옛날 야인시대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김두한이 나중에 국회의원이 됐을 때 실제로 국회의사당 안에서 똥물을 뿌린 사건이 있었다. 그이유야 어찌 됐던 지금 이사회에도 똥맛을 제대로 봐야 할 인간들로 가득 차있다. 제 얼굴에 똥칠하며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몰염치한 인간들이 말이다. 특히 용산과 여의도 국회안에서 썩은 냄새를 풍기며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그들을 생각을 하면 그야말로 분료수거차를 불러 깨끗하게 정화시켰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가 아무리 잘난척해도 똥을 싸야만 살 수 있으니 우리는 똥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반면 선생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은 교직에 있다 정년 퇴임한 마누라를 보면서 그 말의 의미는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 살라는 그런 험한 말이 내게는 해당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고 또 빌어 본다. 그 옛날 동네에 똥차가 올 때면 똥 푸라는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베이스 음역대로 가끔 지나가는 칼 갈으라는 소리와 대조를 이뤘다. 그런 것도 그리운 걸 보면 법정 스님글 중에 " 늙기가 얼마나 싫었으면 가슴을 태우다 이렇게도 멍이 들었는가 라며 가을바람 소슬하니 너도 어쩔 수 없다는 이 말은 가을 단풍잎 같은 내게 던지는 말인 듯 그야말로 세월이 야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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