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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권 Oct 19. 2024

며느리에게 보내는 편지

고래가 사는 세상

불편한 허리 때문에 밤새 뒤척이다 일어나 보니  비가 아직도 멈추지 않은 깊은 밤이구나. 어제 너의 아버님 일주기 기일을 맞아 절에서 올리는 제사를 함께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과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어  좋았다. 너무 일찍 가시게 되어 아쉬운 미련은 남으셨겠지만 그래도 아내와 식이 함께 올리는 제사상과 지장보살 염불 소리에 무척이나 행복하셨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 보니 너의 아버지와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내겐 선하고 여린 느낌의 풍류를  아는 멋진 분이었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한밤중이라 그런가! 뭔가 허한 느낌이 들어 이어폰을 걸치고 내가 좋아하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듣고 있자니 잔잔하게 두드리는 그 선율이 언제 들어도 채워지고 위로받는 느낌이라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되는 시간이 된다. 사실 내가 지난 동안 써본 글 중 그래도 건질만한 게 있을까 하고 늘 뒤적여 보지만 눈에 띄질 않더구나. 이런저런 신경을 써보기도 했지만 금세 지루해지고 머릿속이 엉클어져 얼마 못 가 그만 두기를 여러 차례 그래서 벼룩시장에서 뭘 찾듯이 이것저것 다독도 해보았지. 내 귀에 꽂이는 음악을 골라 들으며 서서히 그 내용을 알아가듯 그런 글들을 찾다 보니 인생도처유상수란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시간들이었다. 결국  무궁무진한 글쓰기 세계에서 그냥 허우적거리다 마음만 위축되어 자신감만 잃어 가게 되더라. 그러나 나의 알량한 꿈의 끈을 놓질 않고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한 가지가 뭔지 아니? 너의 아버지가 병원 입원 중에 마지막으로 보내주신 내 글에 대한 칭찬 그 한마디였지. 카톡으로 보내주신 그 내용을 지우기 싫어 내 휴대폰 안에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는데 용기를 주셔서 고마웠다는 인사와 함께 이젠 그만 지우려 한다. 내 글이 힘을 뺀 투수가 던지는 공과 같다던 그 말씀, 그래서 아무리 초딩 수준의 글이지만 어디선가 마주한 닥종이 인형의 표정 같은 그런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마음 대로를  적어 나가기로 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으며 모멘토 모리라는 말의 의미까지 알게 됐지만 내게는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계기를 만들어준 감사한 존재였으니 어떻게 보면 새옹지마나 전화위복 이란 말과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살아보니 인생 별거 아니더라고 누가 그런 말을 했지만 그 의미가 뭔지 지금까지도  수는 없고 멍하니 창밖만 쳐다보고 지내신다는 친구 부모님 얘기가 먹먹했던 탓에 인생살이에 대한  생각을 그냥 흘려버리고 나니 그나마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매 순간에  감사하며 지낼 뿐이다.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로봇 청소기와 혼잣말을 반복하며 같은 말 하고 또 하는 할머니와 어느새  5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을 함께 보냈더구나. 이제 그 세월의 끝자락힘겹부여잡고 있는 우리에게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나에게 오면 삶의 무게를 함께 덜어주겠다는 예수님의 구라에 넘어갈 것 같은 기분도 드니 나의 판단도 서서히 흐려지는 가보다.

할머니 말마따나 도척지견이 만연하고 당연한 것 같은 이런 세상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도 행복의 지름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져든다. 그러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고 하니 속는 셈 치고 지내다 성찰과 자성 속에 남은 빈칸을 채우려 한다. 며늘아  그러니 이제 구구절절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간 위적막(艱危寂寞)이란 글귀에 나를 기대 본다. 누구나 쉽지만은 않은 인생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 별거 아닐 수도 있으니 모든 걱정 버리고 너의 가족과 함께 늘 즐겁고 행복한 여정이 길게 이어지길 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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