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나온 의사들이 트라우마에 관한 얘기를 했다. 이게 발전되면 우울증 혹은 조현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며 도파민이 어쩌고 하기에 사실 나같이 충격에 무딘 사람은 이런 것과는 상관없는 줄 알고 살아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세상엔 여러 가지 이유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이유는 너무 많아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 외에도 굵직한 사건 사고등 은 물론 가정이나 학교폭력등으로 인해 얻은 트라우마를 평생 안고 사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았다. 이번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책들 중에서도 소년이온다와 작별하지 하지 않는다 역시 광주 5.18이나 제주 4.3 사건으로 생긴 사람들 마음의 상처와 그 흔적들에 관한 글이라 했다. 아직 읽어보지는 안았지만 뒀다가 나중에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차분하게 읽어 볼 생각이다.
솔직히 내가 살던 시절은 트라우마라는 말조차 몰랐기에 그냥 참고 견디며 정신력으로 극복했으리라 생각된다. 하여간 이런 모든 충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건 화해와 용서 그리고 이해와 존중 그런 것들이 동반돼야 어느 정도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소한 거 같지만 아이들 앞에서 부모가 절대 싸워서는 안 된다는 걸 이번 며느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생각지도 않게 그런 기억 속의 상처가 꽤 오랫동안 남아 며느리도 그런 일로 인해 성인이 될 때까지 그런 정신적 상처가 남아있었던 거 같았다. 그리고 내가 아들과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얘기를 건넸다가 며느리가 던진 직구 한방에 쓰러진 술병처럼 혼자 뒹굴다 방구석에 숨어버린 날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아버지로부터 생긴 마음의 상처가 오래 남아있었지만 그냥 숨기고 살아왔다. 내가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내가 모든 화풀이의 대상이 되듯 수시로 당한 폭력의 상처가 아주 오래 남아있었던지 중학생이 되고 나서도 오줌을 지린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런 지난 생각 속에 나는 자식에게 어떤 트라우마를 남겨주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제 와서 없었던 일처럼 지울 수도 없으니 스스로 치유되길 바랄 뿐이며 나 또한 자식으로부터 무시당한 듯한 더러운 기분도 사라지려면 좀시간이 걸리겠지만 모든 게 내 탓이라는 마음으로 새벽불경소리에 조금씩 씻어 보내려 한다. 집 앞 화단에 노란 민들레 한송이 , 거기서 뭘 찾는 듯 조그만 벌까지 꽃주위를 맴돈다. 다음 주부터는 낮기온이 12도 라는데 시기를 잘못 알고 태어난 건 아닌지 잘 모르겠다. 연약해 보여도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다는 민들레처럼 어떤 조건하에서도 약해지지 말아야 하는 건데 거울에 비친 내 얼굴과 눈빛은 많이 슬프고 지친 표정이다. 살아보니 세상은 아름답지만 등이 휠 것같이 살기가 참 힘든 곳이었고 끈질기게 살아는 왔지만 나는 슬픈 민들레 같았다. 아침부터 상조회사에 가입한다고 전화를 붙들고 있는 마누라를 보니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하는 거 같아 마음은 편해졌다. 테스형을 찾는 소리가 필요할 것만 같은 요즘세상, 무속인들에게 휘둘리며 돌아가는 세상 꼬락서니를 보니 그들이 우리에게 남길 트라우마 역시 충격으로 다가올까 걱정된다. 영적 대화 운운 하는 사람 들은 어떤 트라우마에 시달리기에 무속인들에게 의지 하는지는 몰라도 그들 또한 상처받은 세상에 갇혀 지낸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울 뿐이다. 커다란 상처부터 작은 상처까지 모두 쉽게 아물지는 않겠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물꼬를 트면 고인 물도 흘러가게 마련. 많은 시간이 흐르며 지도자들이 여러 차례 바뀌어 왔는데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상처들이 치유되지 않는 걸 보면 모두가 그들에게 이용당했다는 생각밖에 남지 않았다. 상처뿐인 세상에서 묵묵히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 , 생각해 보면 그들 모두 민들레 홀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