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민의 모닥
*제목 '나는 이제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는 'Offing-Birthday Harle' 의 가사에서 발췌하였음.
나는이제앞으로인생을어떻게살아가야하나. 요즘 흥얼거리는 노래의 토막이다. 노래와 함께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마음 가는 대로!”이다. 기후위기고, 동물의 인생사고, 너무 복잡해서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냥 하게 해 주기로 했다. 사실 저 질문에 대한 답을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깊게 고민하느라 스스로에게 답해주지 못했다. 지금은 반사신경처럼 탁탁 나오는 대답이 그때는 왜 어려웠을까.
경쟁, 학벌, 성장 등등 사회 통념에 깊이 빠져서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해야지, 남들 보기에 좋아 보여야지, 쓸모 있다고 인정받아야지, 내 노력이 부족해서 못하는 거야, 이겨야지.. 등등 이런 평생 채워지지 않을 욕구가 제도권 교육 아래서 '평범'인 줄 알고 자라왔다. 그래서 나는 몇 살에 무슨 자격증을 취득하고 몇 살에는 뭘 이루어 놓고의 누구에게 표명할 결과가 중요했다. 어쩌면 기계적일 수 있는 구상을 이제 하기 싫어졌고 결과에 집착하는 것이 내 삶에 중요한 걸까 싶었다.
그때는 사회가 인정해주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돈을 벌지 못해 독립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평생 독립-내 집 마련을 이야기한다-을 못할 것 같은 그런 두려움이다. 그렇다고 당장 길에 나앉을 만큼 가난한 것도 아니었다. 물론 이것도 가족 중 경제활동을 도맡는 어른의 그늘에 있으니 가능한 것이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 나를 파렴치한으로 생각하게 되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대학을 안 간다고 해서 지원을 끊은 상황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집착은 아르바이트로 눈을 돌렸다. 이력서를 넣어두고 알아보는 중이라 일을 하게 될지 말지도 미지수다. 돈 많이 버는 게 목표가 아닌데, 수단으로써 필요하다고 해도 알바에 집착하는 마음도 모순인 것 같고 그냥 날 때부터 자본랜드에 의사 상관없이 입장료를 내고 입성한 모순덩어리의 인생 시작인 것이다.
비건과 기후운동을 하면서 바뀐 마음 중에 하나이다. 내가 행동하는 시간에 모르는 새 사라지는 것들을 당장에 지킬 수 없는 것처럼, 내가 행동한다고 공장식 축산은 한 번에 사라지지 않고, 당장의 모든 플라스틱 생산이 중단되지 않고, 내가 행동한다고 석탄 발전소의 가동으로 인한 피해는 멈추지 않고, 내가 그곳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를 아예 쓰지 않는 것도 아니며 경로도 정확히 모른다. 탄소중립위원회 위원들이 모두 사퇴하거나 탄중위가 해체되진 않는다. 나는 이 1.5℃라는 온도도 지극히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나온 한계선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야생동물은 사라져 극소수만이 남고 바다는 산성화 되고 곧 토양도 산성화 될 것이고 토종생태가 죽어있는 마당에 누구를 위한 온도인가. 우린 이미 선을 넘을 대로 넘었다. 대중에게 각인시킨 온도 1.5℃만 넘지 않으면 살만한 세상일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내가 행동한다고 넘지 않을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행동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렇게 번듯한 결과 내기만이 근거가 되던 내 행동은 균열이 났다. 그래서 기후위기로 인한 생태학살은 비극이지만 내가 이런 실태를 체감할 수 있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 가는 대로 신경쓰고 싶은 것들에 시간을 쏟기 위해 대학을 안 가기로 했다. 이제는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연을 무시한 체제에서 기반한 내용과 제국주의적인 시선이 담긴 학문들을 중심으로 공부하려니 심사가 뒤틀려서 대학교 자퇴를 하고 환경 관련 학과를 찾아보며 재수를 하는데 일주일 전쯤 그만두었다! 왠지 해방된 이 느낌!! 비건을 시작하고 SNS활동을 활발히 했는데 비건 계정들을 팔로우하고 흘러 흘러 2021년 초에 청년기후긴급행동을 알게 되었다. 김공룡이라는 이미지가 재밌어서 기억에 남아 소식을 살피고 있었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은 단체명에서는 표적이 드러나진 않지만 소식을 보니 기업을 타깃으로 움직이는구나 나는 못할 일이다 대단하다 싶었고, 유쾌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내가 일원이 되어 있었다. 이 사실만으로 반증인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내가 나의 흐름을 만들어서 기회라고 알아채지 못한 기회들도 주어지고 피곤할 때도 있지만 원하는 배움을 이어나가는 게 괴롭지 않고 재밌다.
내 존재만으로 감당 못하고 있고 혼란이 가득한 것 같다만, 마음 닿는 대로 아픈 이들 옆에 있고 싶고 고민하고 투쟁하면서 살 거다. 계속해서 변화되는 다짐을 매일 해 본다. 모순덩어리임에도, 그럼에도! 선택하고 다짐할 수 있는 내일을 상상할 수 있어서 운 좋은 삶과 몸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한다.
모닥 불씨 | 전지민
혼란하지만 불안하진 않은 지민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jiji_jimni/
BGM : Offing-Birthday Harle
https://www.youtube.com/watch?v=GfbHmGzC-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