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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호연 Jun 10. 2022

콩나물 국밥은 게임과 함께

먹이보다 재미가 절실한 노동자의 식사시간


한주의 마감을 마친 저녁이었다. 동거인과 나는 서로의 눈밑에 생긴 반달 모양의 다크서클을 보면서도 차마 놀릴 기운이 없어 조용히 식탁에 마주 앉았다. 낮 시간 동안 각자 식사를 해결하고 작업에 매진한 터라 오래간만에 마주보는 것이었지만 아무말 없이 서로의 앞에 태블릿PC를 노았다. 어린 시절에 식사 예절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젓가락질 다음으로 '먹을 때는 딴짓 않기'이지만 오늘은 정말로 딴짓이 절실했다. 먹이보다 재미가 절실한 지친 노동자들의 시간. '게임하며 밥 먹기'는 그 밥이 내가 한 밥일 때에만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릇에 밥을 깔고 데우지 않은 콩나물국을 담아서 반찬도 없이 먹었다. 밑이 넓은 백색의 도자기 수저는 무엇을 먹어도 '퍼먹는' 식이 되어 우아하지 않지만 국밥을 먹을 땐 이만한 수저가 없다. 뜨겁게 데운 냉동밥은 실온의 콩나물국을 어우러져 내 체온만큼 미지근한 온도가 되었다. 딴짓하며 퍼먹기에는 최적의 온도다. 어떤 국이나 국밥을 먹을 때에도 건더기는 젓가락으로 건져먹는 습관이 있는데, 콩나물은 특히 그렇다. 동거인도 마찬가지라, 국밥을 먹을 때에도 당연히 젓가락을 준비하는 편이다. 이는 건더기의 맛과 국물의 맛을 따로 즐기고 싶은 아주 섬세한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아마도 자기 침에도 사레가 들리는 사레천재라서 그런 것 같다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국물 멸치가 떨어져서 잔멸치로 육수를 만들기 시작한지 한참 되었는데, 콩나물국은 이쪽이 훨씬 맑고 은은한 맛을 내는 듯하다. 앞으로도 콩나물국은 잔멸치를 우려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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