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인 듯 흩어지는 운명은
어느 한순간 자의였던 적 없어도, 따르지 않은 적도 없었다.
우리는 생업에 목매며 하염없이 떠도는
21세기의 유목민이므로
몸을 뉘여도 끝나지 않는 외로움과
쉬어도 멈추지 않는 불안함에 뛰쳐나가도
달릴 땅조차 주어지지 않은 이들은 그저 허공을 보아야 한다.
그마저도 가려진 자들은 흐린 눈으로 헤매는 가난한 삶,
불행은 공평했지만 평등하지는 않았다.
구름에 걸려 떠나는 이의 이름과
좋은 이에게 좋은 이별이 있어야 한다는 비장한 고별사는
넘쳐 부서지는 건배와 함께 사라졌지만
어떤 이에게는 전의(戰意)로 남아 오랫동안 곱씹어야 했고
빌딩숲을 헤매는 이라면 누구나 온몸으로 바람을 버티며
사선(死線)에서야 끝날 것 같은 절망을 걷다 보면
평원의 한적한 길 위에서 재회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