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더스 헉슬리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의 존재와 정신, 그리고 더 나아가 존재의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일 것입니다. 인간답게 사는 방법은 곧 우리의 지향해야 할 존재 방식을 말하는 것일 테니까요. 사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생물학적 진화에 의해 탄생한 찰나와 우연의 산물일 테지만 철학은 항상 그 너머의 정신세계에 대해 물어왔습니다. 3대 디스토피아 픽션 중 하나인 '멋진 신세계' 역시 90여 년 전에 쓰인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통찰력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그 상상력 속의 현실에서 인간의 존재 이유와 존엄성의 근원에 대해 묻습니다.
전반부는 마치 맥거핀과 유사합니다.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등장인물들의 길고도 지리한 대화와 연설을 통해 표현되지만 정작 본론에 들어가고 나면 맥이 풀리고 마는 지나치게 친절하고 시끄러운 잡담이 되어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반부에 들어서면 독자가 빠져들 수밖에 없는 굉장한 몰입감이 있습니다. 20세기 초의 소설답게 전통적인 플롯을 철저하게 지킨 덕분에 익숙하고 편안하게 작품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모이고 만나는 과정에 도달하고 나면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질문들은 주인공의 인간적 존엄성과 나 자신의 그것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대조하며 장고(長考)에 빠지도록 하기도 합니다. "내가 원하던 삶이 사실은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이었던 것인가?"
다시 교수님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면 인간성은 형태에서 나타나는가? 정신에서 나타나는가?라는 두 가지의 의문으로 압축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우리의 인간성이 법규나 규칙의 엄수, 이성적이고 효율적인 판단 속에 있는지 또는 감정적이고 감각적이며 원초적인 욕구들의 만족을 위한 일련의 행동들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는 날까지 행복하고 젊음을 유지하며 고통과 불행을 잊을 수 있는 세상은 정말 멋진 신세계로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 이유가 오직 행복뿐이라면 그래서 우리가 평생 행복 속에서 살고 싶다면 그 방법은 이 책의 내용과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은 실체가 없는 자기만족이며, 그 이전에 존재하는 불행과 불안, 고통과 지루함에 대한 자기 위로적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저로써는 끊임없는 행복의 전제 조건은 강제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주입식이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답일 수밖에요. 반대로 그에 대한 지나친 반발은 결국 자기 파괴적인 고통 또는 자기 학대이며 그 끝이 어떤 불행으로 끝날지 우리는 모두 예측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장렬히 사그라드는 허무주의로 가득 찬 이 책의 종단에서 다시 한번 책을, 주인공을, 나를 돌아보게 하고, 우리의 존재가 그렇듯 우리의 인생에서 얻어지는 수많은 감정들 또한 그렇게 찰나의 순간에 나타나는 우연의 산물이 되어 자연스럽게 존재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주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욕구와 욕망의 충족을 위해 강제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시대를 관통하는 답을 찾아내고 나면 내일은 진실로 '멋진 신세계'가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