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에서 나를 본다는 것은
우린 사느라 바쁠 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 수도 있어요. 오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오베라는 남자가 있다. 그는 너무도 나와 닮았고, 나는 그를 닮았다. 그를 오베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그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나는 실재하는 인물이니 내 이름을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소설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는 뜻은 아닐는지.
마땅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누군가에게도 뒤늦게 사랑을 주는, 그리하여 나 역시 그에게 마땅히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는 일생의 행운이 우리 모두에게 찾아올 수 있다. 오베에게 소냐가 그런 존재인 것처럼 아름답고 선한 존재가 나를 구원할지도 모른다.
최고의 남자는 잘못에서 태어난다고 했어요. 나중에는 한 번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경우보다 훨씬 나아진다고요.
알랭 드 보통이 "불안"에서 말하듯, 인간이 궁극적으로는 사랑받는 것을 갈망하는 존재라면 오베 역시 조용하 그리고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내면에도 뜨거운 사랑이 넘실대고 있었기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투박한 진심이라면 소냐에게는 충분했을 것이다. 작가는 오베를 통해 근면하고 변함없는 태도와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부부의 가치임을 여러 번 반복하며 이야기한다. 빠르게 변하고 가치의 무게가 이동하는 시대에서도 변치 않아야 할 사랑의 자격에 대해 오베가 증명하는 동안, 나는 감탄했다. 이런 로맨티스트라니!
어딘가 비뚤어진 표현법과 지독하게 융통성 없는 가치관, 원리원칙에 대한 극단적 집요함은 오베가 이상한 이웃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전자제품 코너에서 소리를 지르며 직원을 사기꾼 취급하는 잔뜩 화난 할아버지는 사실 국적무관, 우리의 주변에서도 종종 찾을 수 있다. 1+1 할인을 단품 가격에 적용하고자 하는, 그러다 결국 두 개의 꽃다발을 사고 마는 그를 보고 있으면 슬쩍 무서울 때도 있었다. 지금의 내가 조금만 더 성격이 이상해지면 그처럼 늙을 것 같다는 불길한 확신은 책을 읽을수록 선명해졌다.
그런 오베를 소냐가 왜 그토록 사랑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어느 날 아내에게 나의 장점을 물었을 때, 그녀는 변하지 않는 것과 근면 성실이야 말로 내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라고 했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베가 이웃들의 곤경을 모른 척하고 싶을 때마다 '소냐가 싫어할 것'이라며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모습에서 아내의 말을 떠올렸다. 아내에 대한 변함없고 근면성실한 사랑. 그래서인지 그가 소냐의 무덤을 찾아갈 때마다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오베는 그녀를 위해 싸웠다. 왜냐하면 그녀를 위해 싸우는 것이야말로 그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아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나를 인정해 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마침내 배우자일 때, 가장 무서운 것은 그를 실망시키는 것과 그가 없는 세상일 것이다. 항상 입버릇처럼 아내에게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이 없으면 아마 죽을 것 같으니까 당신이 나보다 오래 살아." 그러므로 나는 오베의 자살 시도를 충분히 이해한다. 자식조차 없는 그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는 그 무엇도 없었을 테니 내가 오베라면 더욱 신속히 결단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보다 절절한 애정이 어디 있을까 싶은, 근래에 들어 나를 가장 재미있고 즐겁게 해 준 그는 오베라는 남자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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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