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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ve Slow Mar 06. 2024

[서평]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공대생임에도 불구하고 (불순한 의도로) 인문대 교양수업을 듣던 시절, 사회 심리학 강의에서 인류에게 필요한 것을 순서대로 결정하던 토론이 있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순수 예술을 마지막 순서에 배치하는 것을 보며 혼자서 통탄하던 때가 있었다. 예술은 정말 "사치품"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일까? 배고픔 앞에서는 절대적으로 후순위가 되고 마는 불필요한 행위일까? 나의 아내는 플로리스트인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꽃마저도 사치품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일상의 무미건조함이 과연 실용성을 대변하는 것인지 의문일 때가 있다. 


반면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은 가족의 죽음을 목도한 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의미를 찾기 위해 미술관의 일부분이 된 후 일상의 예술 속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한다. 그래서인지 작년에 발간된 류이치 사카모토의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와 닮았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자신의 죽음을 직시한 뒤, 본인의 긴 음악사를 정리하며 인생을 돌아보고 진정한 가치를 정의했다면, 이 책은 수많은 미술 작품들을 통해 가족의 죽음을 극복하고 인생의 방향과 희망을 만난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꿈꾸며 지향하는 바가 과연 그것이 아닐까? 비탄에 빠진 누군가를 구원한다는 거창한 캐치프라이즈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내가 만든 작품이 언젠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서로에게 축복일 것이다.


책의 대부분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에 대한 설명과 개인적 감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에서 찾은 거대한 삶의 의미를 문학적으로 기술하거나 설명하는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덕분에 미술적 소양이 얕은 나 같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생각보다 많고, 각각의 장마다 등장하는 작품들을 찾아보는 것도 꽤 바쁜 일이 되고 만다. 사진이 첨부되었다면 훨씬 읽기 좋은 책이 되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은 그렇지 않고 다만 책의 뒤쪽에 내용에서 언급된 작품들을 리스트로 실어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나이의 작가가 썼다고 하기엔 감탄할 정도로 깊은 인생에 대한 통찰력, 미술사에 대한 지식, 예술을 바라보는 열린 시선은 충분히 훌륭하다. 또한 후반부로 갈수록 느껴지는 저자의 감정적 변화, 아이를 가진 뒤 느껴지는 새로운 인생으로의 도전과 희망은 읽는 이에게도 충분히 전달되었다.


책의 내용과 별개로 내가 진정으로 부러웠던 것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작가였다. 중학생 시절, 학부모 면담에서 담임 선생님은 부모님께 진지하게 미술계열 진학을 추천했다. 그러나 지극히 보수적이었던 부모님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거절했고, 나는 그대로 학교를 다녀야 했다.(이것과 비슷한 일은 후에 몇 번 더 있었다.) 결국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내 돈으로 잠시 화실을 다니며 그때의 한을 풀어낸 적도 있지만, 여전히 나에게 미술은 이룰 수 없는 꿈과 같은 다른 세상의 무엇인 상태이다. 반면 그는 좋은 직장을 가진-심지어 뉴욕에서-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소비자가 아니라 미술관의 경비원으로써 작품의 주변을 지키는 사람으로 존재하며,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치유하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다. 그 선택의 원동력은 아마도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주체성,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 아이에게 가르치고 싶은 가장 큰 인생의 길잡이기도 하다. 


시류에 동조하는 것에 익숙하고 남들과 다른 것을 크게 원치 않는 편이지만, 이 책이 좋은 책인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공감이라는 것이 비슷한 경험 또는 상상할 있는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가정한다면, 저자의 감정을 공감하기 위해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가본 적이 있거나, 책에서 거론된 작품들 많은 양을 알고 있어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세이가 친절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없지만, 이동진 평론가 같은 지성인이 아니어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면 더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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