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 소설
뉴스에는 내일이라도 인류 종말이 올 것 같은 무자비한 사건과 사고가 넘쳐나고, 이미 진행 중인 전쟁으로 긴장감이 팽배한 국가들도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류의 멸망이 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궁금해질 때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인류애를 지키는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평범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박수와 눈물뿐이지만, 덕분에 인류가 절멸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얻는다.
이 책의 서두는 너무도 평범하고 고요하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무의미한 대화와 서사가 꽤 지나고 나면 갑작스러운 긴장감이 지배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도달해서 드디어 터져버리는 감정에 마치 클리셰처럼 온 마음이 흔들린다. 전작인 '맡겨진 소녀'에서 그렇듯, 작가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종단에 이르러서야 아주 짧고 너무도 강렬하게 독자에게 던진다. 그리고 독자는 무방비상태로 대책 없이 그녀의 메시지를 건네받는다. 그리고 동요한다. 등장하는 이는 모두 평범한 소시민이고, 게 중 좀 형편이 나아 보이는 주인공 또한 부지런함을 벗어날 수 없는 오너이자 노동자이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그와 그의 가족을 불행으로 몰아넣겠지만, 영혼은 구원받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옳은 것인지는 그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정의와 행복이 동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현실"이라고 부르고 누구는 "불공평"이라 부르고 또 누군가는 "모순"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해서.
나는 언제나 힘든 아이들을 돕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제대로 행동에 옮긴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옳은 것임을 모를 리 없었지만, 생활고에 지친 삶에서 누군가에게 재화나 시간을 내놓는다는 것이 나에겐 쉽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시작한 직장생활의 주 수입은 이리저리 빚을 갚고 생활비로 쓰느라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므로 언젠가 형편이 나아지면 돕겠노라는 허황된 약속만이 마음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따르던 상사가 꽤 오랫동안 기부를 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그날 하루종일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와 나의 차이는 극명했다. 행동하는 사람과 말로만 하는 사람. 그리고 그날 저녁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기부를 시작했다.
전작에서도 그렇듯 이 작품 또한 20세기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내용이 전개되는 탓에 시각적 묘사, 지리적 명칭, 사회적 배경이 무척 생경해서 적응하기에 편한 글은 아니다. 눈에 그려지듯 전개되는 내용은 아니지만 문장이 명료하고 묵직해서 마치 감정을 잡아내리는 듯 바닥에 가라앉은 채 읽게 되는 힘이 있다. 나는 이렇게 집중할 수 있도록 독자를 잡아당기는 작품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기꺼이 내려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더없이 내려갈 수 없을 때, 그녀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종류의 인간이냐고. 불의 앞에서 행복을 담보로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냐고. 우리가 미처 구하지 못한 과거의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용기 내어 그들을 구할 수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