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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Aug 11. 2024

내가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아티스트웨이 1주 차 : 경이감

내면소통 독서모임이 끝나고 바로 다음 독서모임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티스트웨이'.


10년 전 생일 선물로 받은 '아티스트 웨이'를 읽었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버전으로 같이 읽어보자는 것이었다.


아티스트웨이는 주차별로 과제들이 있다. 전에 그 과제들을 전부 해보지는 못했다. 몇 개 정도 생각해 보고 적어봤을 뿐. 과제를 해내는 것은 웬만한 의지가 없으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 안에서 나의 '창조성'을 발견하고 내 삶에 변화가 있었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내가 정말 해보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그 무엇이 바로 '뮤지컬'이었다.


결국 조금씩 꿈에 가까워졌고 결국 교사 뮤지컬 동아리에 들어가서 작품을 몇 개씩이나 해낼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정말 뜨거웠고 행복했다. 밥을 제때 먹지 않고 연습을 해도 충만한 행복함이 있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티스트 웨이는 사실 '은퇴자'를 위한 책이다. 그래서 예시로 나온 사례들이 거의 60세가 넘은 분들의 이야기이다. 우리 독서모임 중 아직 60대인 분들은 하나도 없지만 우리는 이 책으로 과제를 해내기로 했다. 과제 중 기본 4가지는 아래와 같다.


1. 모닝페이지 :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의식의 흐름에 따라 손으로 3쪽씩 글쓰기. 당신만 볼 것

2. 회고록 : 주마다 몇 년 단위로 기억을 일깨우고 당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기

3. 아티스트 데이트 : 일주일에 한 번씩 뭔가 재미있는 것을 찾아보는 혼자만의 탐험

4. 산책 : 일주일에 두 번, 개나 친구나 휴대전화 없이 20분간 혼자 걷기




가장 먼저 산 것은 공책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닝페이지를 써야 하기 때문에, 너무 작거나 크지 않은 공책 하나를 샀다. (작가는 a4사이즈를 추천한다.) 그리고 그 공책에 각 주차별로 <과제>라고 적힌 부분을 하나하나 손으로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나의 아티스트 데이트 10가지는 아래와 같다.


1. 그림 그리러 가기

2. 호수공원 자전거 한 바퀴 돌기

3.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 먹어보기

4. 혼자 운전해서 새로운 장소 가보기

5. 연습실을 빌려서 노래 연습해 보기

6. 혼자 춤춰보기

7.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으러 바닷가 가기

8. 비가 엄청 오는 날 우산 없이 쫄딱 맞아보기

9. 연필로 스케치북에 그림 그려보기

10. 오일파스텔로 그림 그려보기




1주 차 아티스트 데이트로 동네 미술키즈카페에서 하는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내일 오전에 바로 가서 할 수 있을까요?"


대답은 오케이. 다음날 그리고 싶은 그림 몇 장을 찾아서 키즈카페를 찾아갔다.


처음 붓을 손에 잡을 때 그 느낌은 묵직했다.


'내가 이런 걸 잡아도 되는 사람인가? 왠지 물티슈를 잡고 뭔가를 닦아야 할 것 같은데 붓이라니.'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물감을 뭉개고 칠해가며 선생님이 안내하는 대로 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생각은 거의 사라졌다. 여기에서 저기로 누르고 칠하면서 좀 더 그림이 나아지기를 바랐을 뿐.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 풀잎을 그리는데 갑자기 감정이 올라왔다.


연두색으로 칠한 들판 위에 초록색을, 그리고 그 위에 아주 진한 청록색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하게 울렸다. 슬펐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 순간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 풀잎 하나에 인생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진한 청록색'을 올리는 그 순간이었다.  





만약에 선생님이 "이쯤 하면 됐어요. 완성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하고 성급하게 그림을 완성이라고 말했다면 거기에서 수긍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고른 그 그림의 디테일을 전부 살려주셨다. 바탕의 미묘한 색의 변화와, 풀잎의 튀어나온 3줄기 꽃송이 그리고 테두리의 구름 부분과 달, 내리는 별똥별까지. 마치 자기 작품인 것처럼 완벽에 가깝게 완성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나는 완성된 그림을 보고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이걸 내가 완성했다고?




그림이 정말로 마음에 들었고, 그림을 중간에 포기하거나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는 게 마음으로 충만하게 느껴졌다. 나는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두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최근 들어 그렇게 몰입해 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마치 멀리 여행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들떠있었다. 키즈카페를 나와서 잠시 걸으면서도 벅찬 그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그랬다.




저자는 '창조성'이 우리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창조성은 생명체의 자연 질서이고 순수하고 창조적인 에너지라고 말이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는 작은 변화는 어쩌면 별거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안에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첫 번째 아티스트 데이트 '그림 그리러 가기'. 그렇게 적을 때만 해도 이렇게 뭔가를 느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숨어있는 창조성이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창조적인 사람이란 걸 그동안 잊고 지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부드럽고 폭신한 창조성이 잠들어 있다.


조심스레 묻고 싶다.


당신의 창조성은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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