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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두치 Dec 20. 2023

아랍의 봄을 타고

이집트 카이로의 밤으로


새벽 3시 카이로에 도착했다. 숙소를 잡기 애매한 시간이라 카이로 국제공항에서 노숙할 자리를 찾아야 한다. 함께 비행기를 탔던 승객들이 공항에서 나가자 도착층이 한산해졌다.


이곳에서 잠시 눈 붙일 수 있겠다 싶었지만 이내 택시 호객꾼들이 말을 걸기 시작한다. 무거운 배낭을 다시 메고 조용한 출발층으로 옮겨 자리에 누웠다.


심카드를 만들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당분간 머물기로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메시지가 와있다. 카이로에 잘 도착했냐는 안부 인사와 함께 시간이 애매하니, 별점 5점을 전제로 일찍 체크인을 해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부랴부랴 공항을 벗어나 숙소로 가는 택시를 찾는다.


차량 번호판 숫자가 아랍어로 적혀있어 조금 당황했다. 눈을 부릅뜨고 내가 찾는 번호를 틀린 그림 찾기 하듯 하나씩 찾아보면서, 이집트에 도착한 것을 실감했다.



카이로에 어서 오세요.

한동안 고속도로를 달리던 택시가 톨게이트 앞에서 잠시 정차한다. 톨게이트 위로 커다란 전광판이 보인다. 'Welcome to Cairo'라는 문구가 흘러가고 있다. 그 표지판을 보고 있자니 한국에서 만났던 이집트 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차창 너머로 난생처음 보는 곡선과 색의 조명들이 보인다. 도시를 수놓는 빛의 향연이 아름다워서,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도 떠올랐다. 그러나 간간히 독재자의 얼굴이 보인다. 아름다운 카이로를 배경으로 짙은 어둠을 느낀다. 우리가 공유하는 또 다른 세계가 보인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으며 한없이 가라앉는 마음을 느꼈다.



한국의 이집트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 기록


서늘하고 묵직한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향신료 냄새,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간판들 너머로 밤 시장엔 사람 하나 없다. 아까 찍은 전광판 영상을 한국에 있는 이집트 친구들에게 보냈다. "너 정말 이집트에 갔구나! 사진 더 많이 보내줘" 오랫동안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모습을 더 많이 보내고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카이로 도착한 첫날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의 창 밖 풍경


숙소에 도착하자 머리맡 창문 너머로 새벽 아잔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오랜 비행의 긴장과 여독을 풀어주는  같다. 친구들의 집이기도  이곳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아랍의 봄을 타고 여기까지 흘러온 우리의 얼굴들을 떠올리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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