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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두치 Jan 05. 2025

여행과 죄책감

2023년 2월, 이집트 카이로 여행의 기록

아침에 따흐레르 광장 근처의 카페로 왔다. 숙소 주변에 평점이 높은 곳이길래 공부도 할겸 와봤다. 와보니 편하긴 하지만 내가 별로 선호하지 않는, 외국인들이 줄서서 먹는 깔끔하고 비싼 곳이다.



일기를 쓰는데 창문 너머로 휴대용 미니 티슈를 파는 할머니가 보인다. 내놓은 미니티슈가 5개 정도 되는데 바람에 날라가지 말라고 돌을 올려뒀다. 할머니는 호객도 안하고 그냥 앉아서 한참을 코를 파다가 바닥을 보고 멍때리거나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들을 올려다 본다.



부르카를 입은 사람이 티슈를 두개 사갔다. 이내 교통 경찰이 와서 여기에 있으면 안된다 말하다가 그냥 못본척 지난다. 또 한참이 지나니 어떤 사람이 돈을 좀 쥐어주고 간다. 또 좀 지나니 매일 만나는 것 같은 청소노동자가 일부러 할머니쪽까지 와서 인사를 건네고 간다.



할머니 이빨이 다 빠진 것 같다. 우리 할머니도 이빨 다 빠져서 틀니 안꼈을때 저랬는데..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의 모습이 떠오른다.



대로변에는 타흐리르 광장을 지나는 버스들이 보인다. 그러다 버스 안의 꼬맹이와 눈이 마주쳤다. 이렇게 깔끔한 카페에 시원하게 앉아있는 내가 신기하다는듯 쳐다본다.



아까 할머니에게 반갑게 인사했던 청소노동자가 거리를 닦는다. 비질로 가라앉았던 모래 먼지가 일어나 금방이라도 내게 쏟아질 것 같았지만 두꺼운 유리벽이 먼지를 막아준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할까.


요즘 죄책감을 많이 느낀다. 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이야기를 나눈 미도도 팔찌 하나를 팔기 위해 하루종일 시장을 누비며 호객을 한다.



내 옆에 있던 인도 사람들에게 “how can I take money from you?”라는 농담을 던질 정도로, 그는 그의 삶 안에서 노동을 조율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다른 호객꾼들과는 달리 팔찌를 사달라는 말을 단 한마디도 내게 건네지 않았다. 나는 그게 너무 신기했다. 이미 그는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호락호락하게 팔찌를 사지 않는다는걸 알고, 다만 관계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내게도 그랬듯 자기 유튜브를 홍보하고 인스타 친구를 맺고.. 그래서 다짜고짜 자기 아내가 되어달라했다. 나는 그가 내게 팔찌를 팔았던 것처럼, 그말을 농담처럼 넘길 수 있었다. 그러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멋져 보였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 청소년이 길바닥에 주저 앉아있었다. 오전에 봤던 그 장소 그 모습 그 표정 그대로 였고 다시 죄책감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한국의 이집트 친구들이 생각났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서 그들은 정부와 싸웠고, 모든 것을 잃고 난민이 됐다.


나는 이번주 내내 먹고 싶은 것을, 넘치도록 다 먹었고 카이로에서 사고 싶은 것, 필요한 것을 충분히 다 샀고, 배우고 싶은 것도 다 배웠다.



이제 내게 죄책감을 주는 카이로가 싫어지려고 한다. 하나가 싫어지니 길거리에 고양이를 괴롭히는 사람도 더 잘보이고, 이집트 고기 요리 냄새가 더 역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제는 카이로를 떠날때가 된 것 같다.



나는 어쩌면 여기서 이러는 내 삶이 싫은 것 같다. 내 삶이 싫어서 카이로가 싫다. 카이로와 이집트가 내게 죄책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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