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애도하며
10대에 했던 존재론적 고민을 작년에 다시금 하는 때가 있었다. 그땐 바깥 세상일 모두 잊고 과학 유튜브 파도에 빠져 일주일을 넘게 집에서만 살았다.
그 당시 아무리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양자역학 영상들을 보며, ‘입자가 슬럿을 통해 두개의 줄로 나뉘어졌을때 상자속 고양이가 죽을 수도 있고 살수도 있는 두가지 가능성>도대체 무슨말이야>있기도하지만 없기도하다는건 어딘가 마음의 속성과 닮아 있구나>입자의 집합체인 나라고 생각되는 몸은 살며 만나는 여러 슬럿을 통해 무수한 가능성 중 하나의 입자로 살아가는건가> 내가 유전자의 맥락에서 존재하는 것이라면 왜 하필 나는 나라는 우연성을 가지고 태어난걸까> 그냥 자연의 흐름에서 내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 있기도하고 없기도 하는 것 일 뿐인건가> 우연히 결집된 원자로 이루어진 내가 무수한 슬럿을 통과하며 빚어내는 삶의 역동은 기적의 확률인거구나>’이런 망상들을 하곤 했다.
그 당시 거듭된 과학 유튜브 영상 시청은 내게 중요한 감각을 일깨워줬는데,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유기체의 결합인지! 내가 얼마나 기적의 확률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오롯이 내가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몸이며, 진화론의 관점에서 나를 구성하는 창발적 자의식에 대한 부분만 제외하고는 자의식 또한 큰 우주의 역사와 유기적 관계 안에 있음을, 즉 나는 우주의 법칙 속에 있음을 몸으로 감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어짜피 죽을 운명인데 이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굳이 고통을 기반으로 한 삶을 견뎌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따위의 ‘왜 살아야 하는지’를 내 삶에서 통틀어 물을 만큼 생의 의미와 이유를 찾아왔고, 그만큼 의미나 이유가 없으면 이 생을 버티기 힘들었고, 또 반대로 후회 없이 살고 싶었기에 생의 의미를 간절히 만들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우주적 관점에서 살아 있음은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없기도 하다. 생과 사는 각각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의미가 없기도하다. 그래서 생은 일어나면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던 것이고 죽음 또한 일어나면 우연히 일어난 일인 것이다.
전심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시기를 지나왔다. 그 시간들에 대한 후회보다, 실패의 훈장들이 내게 남긴 교훈을 안고 소중히 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결과에 대한 책임도 삶으로 받아안아 흘러가는 연습을 계속해서 하는 것 같다.
때로는 그 책임이 한없이 무겁고, 삶이 쉴새 없이 내려치는 따귀를 맞아내느라 지구의 내핵까지 가라앉는 것 같을 때도 있다. 그래도 나와 다른 이나 이 생을 미워하기 보다 그저 최선을 다해서 사랑했을 뿐이라고 기꺼이 털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과거의 나는 내가 미친듯이 노력해서 그 자리까지 갈 수 있었다 생각했지만, 이젠 삶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음을 느낀다.
나는 돛단배고 삶은 바다!
삶은 싸워야할 대상이 아니라 친구라고 했던 마음챙김 스승의 가르침을 곱씹는다.
2022년부터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신변정리를 시작했다. 2023년, 미련없이 죽기 위해 아프리카 일주를 시작했다.
죽기 위해 떠난 여행길에서 바다와 프리다이빙을 만났다. 만뎅춤과 음악을 만났다. 동,남부 아프리카에서 살아가는 동물과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그 만남을 통해 내 오랜 아픔을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다. 그들은 생의 공포에 벌벌떨고 있는 나를,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줬다.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나의 곁이 되어줬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때 비로소 연못을 틀수 있다는 말이있다. 2023년은 이 세상에 더이상 길이 없고,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을때 삶이 내게 연못을 틀어준 한 해였다.
삶은 내게 고통없는 완전한 행복이나 어떤 수준에 도달하는 깨달음에 이르는길을 알려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련과 고통이 깊고 길어질수록 다른 존재들과 더욱 깊이 연결될 수 있음을, 그 속에서 살아가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있는 것 같다.
프리다이빙 레벨이 높아질 수록 힘을 빼고 바다 한가운데에서 잠드는 법을 배우듯, 삶에도 프리다이빙을 하고 싶다. 오고가는 고통과 시절인연, 경험과 카르마들을 통해 억압된 마음과 생을 받아들이는 수용력을 깊이할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을때 나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나였음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을때 나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모든 만남이었음을.
삶에서의 준비호흡을 기억하며, 바다의 파도에 시작과 끝이 없듯,
나는 흘러갈 것이고, 다시 살며 죽고 태어날 것이다.
올 수 있고 갈 수있는 것
생길 수 있고 사라질 수 있는것
모일수 있고 흩어질 수도 있으며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것
나일수 있지만 나이지 않을수도 있는것
그렇게 모든 것이 변화의 흐름을 이루는 춤이자,
커다란 하나의 연결을 지속하고 있음을!
눈물뒤범벅이 되더라도, 길을걸으며 만나는 모든 생명이
죽음을 향해가고 있음을 볼 수 있기를!
살아있음의 놀이를 기꺼이 축하하고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