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결정자가 될 것인가, 가격추종자가 될 것인가
디지털 유통 환경에서 “좋은 제품”은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니다. 그것은 출전 자격일 뿐이다. 고객은 제조사의 공장도, 공정도, 원재료도 보지 못한다. 고객이 먼저 보는 것은 스마트폰 화면 안에 노출된 상품 목록이다. 그 화면 안에 없다면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평가받지 못한 채 사라진다. 온라인에서는 “좋다”가 아니라 “보인다”가 먼저이고, 보인 이후에는 “싸다”가 선택을 결정한다.
많은 경영자들이 차별화를 성공요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차별화의 수명이 너무 짧아졌다.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은 트렌드를 감지한 뒤 2주 안에 제품을 출시한다. 오픈런 사태를 만들었던 두쫀쿠의 유행 반감기도 17일에 불과했다. 한 제품이 반짝 뜨는 순간 유사 제품이 쏟아진다. 결국 기능은 비슷해지고, 리뷰도 비슷해지고, 브랜드 인지도도 비슷해진다.
남는 것은 가격이다.
명품이나 상징 소비재, 기호품을 제외하면 소비자는 대부분의 제품을 “비슷하다”라고 인식한다. 본질적 품질의 차이를 세밀하게 비교하기보다는 배송 속도, 반품 편의성, 리뷰 수, 단위 용량당 가격 같은 거래 요소를 더 중요하게 본다. 가격 비교는 이미 소비 습관을 넘어 제도화되고 있다. 대형 온라인몰은 단위 가격을 자동으로 표시한다. 100g당 가격, 1매당 가격이 한눈에 비교된다.
이 순간 포지셔닝 맵에서 차별화의 축은 얇아지고 가격 축은 두꺼워진다.
그렇다고 “무조건 싸게 팔라”는 뜻은 아니다. 싸게 파는 것과 싸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가격을 낮추면 브랜드 인식이 훼손될 수 있고, 경쟁사가 따라오면 가격 전쟁이 된다. 중요한 것은 가격을 내릴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즉, 낮은 원가 구조를 확보하되 가격은 전략적으로 결정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격추종자와 가격결정자의 차이다.
시장은 제조사, 판매사, 유통플랫폼이라는 세 플레이어의 게임이다.
제조사의 본질은 수율, 불량률, 생산성이다. HACCP이나 CGMP 같은 인증은 입장권에 불과하다. 같은 설비에서 불량률을 낮추고 단위 시간당 생산량을 높이는 기업은 동일 제품을 더 싸게 만들 수 있다. OEM, ODM, OBM 어떤 구조이든 원가경쟁력이 있는 기업은 선택권을 가진다. 평소에는 마진을 확보하고, 필요할 때는 가격을 조정하며 시장을 흔들 수 있다. 원가경쟁력은 곧 전략적 자유도다.
제조를 직접 하지 않는 판매사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싸게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매입 단가를 낮추는 일이 아니다. 첫째, 브랜딩을 통해 소비자의 지불의향을 높이는 것이다. 애플은 제조원가 대비 높은 가격을 받지만 소비자는 이를 비싸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인지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둘째, 원가경쟁력이 있는 제조 파트너를 선별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모든 속성을 최고로 만드는 것은 전략이 아니다. 표준화하여 원가를 낮출 영역과, 차별화하여 브랜드로 강조할 영역을 구분해야 한다. 셋째, 간접비를 통제하는 것이다. 인당 매출액과 인당 영업이익은 판매사의 효율성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유통플랫폼에서는 가격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쿠팡 역시 무료배송과 같은 저가전략을 바탕으로 고객을 락인했고 배송, 반품, CS를 표준화하며 강력한 소비자 신뢰를 구축했다. 그 대가로 이제는 높은 수수료를 받는다. 플랫폼 안에서는 브랜드 스토리보다 가격 비교 화면이 먼저 보인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단기적으로는 플랫폼에 의존하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자사몰을 키워 가격결정권을 회복하려 한다.
이제 9980 강소기업에게 필요한 전략을 생각해 보자.
“좋은 제품을 만들자”는 구호는 출발점일 뿐이다. 차별화의 수명이 짧은 시장에서, 마케팅 자원이 제한된 기업이 선택해야 할 전략은 분명하다. 싸게 팔라는 것이 아니라, 싸게 만들 수 있는 구조를 먼저 확보하라는 것이다. 전략의 초점을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에서 “싸게 만들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
제조, 영업, SCM 등 경영활동 전반에 원가경쟁력을 운영 탁월성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생산 수율을 높이고, 불량을 줄이고, 재고 회전율을 개선하며, 공급망 리스크를 낮추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브랜드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의 지불의향을 지속적으로 높여야 한다. 한 번 구매하는 “싼 비지떡”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에 반복 구매하고 추천하는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싸게 만드는 것은 단순한 원가 절감이 아니다. 그것은 가격을 설계할 수 있는 힘을 확보하는 일이다. 싸게 만들 수 있는 기업은 마진을 지키고, 필요하면 가격을 조정하며, 시장을 주도한다. 싸게 만들 수 없는 기업은 플랫폼 비교 화면에서 남이 정한 가격을 따라간다.
싸게 만드는 것은 무조건 옳다.
단, 싸게 팔라는 뜻이 아니라, 싸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라는 뜻이다. 그 힘 위에 브랜딩과 운영 탁월성이 쌓일 때, 비로소 가격결정자가 된다.
투자자 관점의 질문
“이 회사가 가격결정자가 될 수 있는 구조인가?”
이 회사의 고정비와 변동비 구조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원재료 가격이 10% 상승하면 영업이익률은 몇 % 하락하는가? 수율 1% 개선 시 EBITDA에 미치는 영향은? 핵심 원가 요소 중 외부 변수에 가장 취약한 항목은 무엇인가?
이 회사는 평균판매가격(ASP)을 지난 3년간 유지 또는 인상했는가? 할인 의존 매출 비중은 몇 % 인가? 경쟁사 대비 원가 우위가 구조적(설비, 기술, 계약)인가, 일시적(환율, 단기 협상력)인가?
브랜드가 지불의향(WTP)을 높이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가? 반복구매율과 LTV는 업계 평균 대비 어떤가? 플랫폼 의존 매출 비중은 몇 %이며, 자사몰 전환 전략은 있는가?
경영자 관점의 질문
“우리는 가격추종자인가, 가격설계자인가?”
우리는 지금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싸게 만들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고 있는가? 제품 스펙 중 고객이 실제로 돈을 더 지불하는 속성은 무엇인가? 과감히 표준화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인가?
제조·영업·SCM 중 가장 비효율이 큰 영역은 어디인가? 인당 매출과 인당 영업이익은 업계 상위 25% 대비 어느 수준인가? 공급망 리스크는 분산되어 있는가, 특정 업체에 종속되어 있는가?
우리는 가격을 먼저 제안하는가, 경쟁사 가격을 보고 결정하는가? 가격을 5% 올렸을 때 이탈률은 어떻게 변하는가? 브랜드가 가격 프리미엄을 설명할 수 있는가?
팀장 관점의 질문
현재 수율은 얼마이며, 업계 상위 기업은 얼마인가? 불량 비용이 매출의 몇 % 인가? 자동화 또는 공정 개선으로 6개월 내 절감 가능한 항목은?
할인 프로모션 매출 비중은? 반복구매율과 재구매 주기는?
리뷰 평점 0.1점 상승 시 전환율은 얼마나 개선되는가?
재고 회전일수는? 공급사 다변화 수준은? 발주 단가 협상 여지는 얼마나 남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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